우리나라에서 가장 맛있는 물고기는 무엇일까? 국토 최남단 마라도에 가면 제주 낚시인들이 다금바리보다 낫다고 평하는 신비로운 맛의 ‘어찌’가 있다.
남양(南洋)의 물결이 넘실대는 마라도(馬羅島). 그 곳에 가려면 깊고 거친 해협을 건너야 한다. 모슬포에서 마라도까지의 거리는 10km에 불과하지만 그 사이엔 141m 수심의 해구가 가로놓여 있다. 그 바닷속에는 뱃사람들을 죽음으로 끌어들이는 사이렌의 마성(魔聲)이 떠돌고 있다.
마라해협의 물은 6시간12분마다 바뀌는 밀물과 썰물에 의해 해협 양안의 마라도와 가파도(加波島)로 밀린다. 그러나 140m 수심을 채운 물이 한꺼번에 통과하기엔 두 섬 연안의 수심이 10~20m로 턱없이 얕다. 그로 인해 해협에는 가파른 해벽을 기어오르려 아우성치는 격류가 늘 소용돌이치는데, 바람이 불면 격류는 무서운 격랑으로 변한다.
제주도 고깃배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해협을 건너는 이유는 마라도 주변이 천혜의 황금어장이기 때문이다. 방어, 자리(자리돔), 황돔(참돔), 갓돔(돌돔)이 잘 잡힐 뿐 아니라 같은 고기라도 마라해협에서 잡은 것은 값을 더 받는다. 모슬포 어부들은 “가파도와 마라도 사이의 물살이 세서 고기들이 실하고 맛이 좋다”고 한다.
특히 마라해협 방어의 명성은 전국에 알려져 모슬포 방어축제로 발전했다. 이런 어장을 낚시인들이 가만 내버려둘 리 만무하다. 낚시인들은 북서풍이 몰아쳐 해협이 가장 거칠어지는 겨울에 가파도와 마라도를 찾는다. 그들이 노리는 특별한 물고기가 겨울에 어군을 형성하기 때문이다. ‘손맛에서 방어보다 낫고 입맛에서 다금바리보다 낫다’는 이 물고기의 이름은 ‘어찌’.
규슈-제주도-대마도 라인을 흐르는 쓰시마 난류대에만 집중적으로 분포하는 회유성 물고기로, 그 중 한 무리가 매년 12월부터 2월까지 산란을 하기 위해 마라해협을 찾는다.
모슬포 항구를 벗어나자 우리가 탄 고무보트는 요동치기 시작했다. 정면에 보이는 납작한 큰 섬은 가파도, 그 뒤에 항공모함처럼 생긴 작은 섬이 마라도다. 두 섬만 들어내면 점 하나 없는 망망대해다.
이 사나운 바다를 일엽편주와 같은 보트로 건너는 느낌이 좋다. 마치 내가 한 마리 날치가 된 듯하다. 파도가 보트 안으로 치고 들어오자 마라도 낚시가 초행인 꾼들은 새파랗게 질린다. 키를 잡은 제주 도남낚시 조성호 사장이 웃으며 손님들을 안심시켰다. “걱정할 것 없어요. 이래봬도 큰 배보다 안전합니다.”
그 말은 사실이다. 고무보트는 수면에 납작 엎드려 물에 젖은 종잇장처럼 파도를 타니까 뒤집히지 않는다. 언젠가 조성호씨가 말했다. “파도와 인생이 비슷한 게 뭔지 알아? 물에 젖지 않으려고 발버둥칠수록 오히려 쉽게 빠져 죽는다는 것이지. 배의 선체를 높이면 물보라는 막아주지만 한 번의 큰 파도에 배가 전복되기 쉽지. 그러나 선체를 낮추면 갑판은 늘 젖어도 배가 뒤집히지는 않는다네.”
그는 배 멀미를 피하는 법도 가르쳐 주었다. “멀미를 느끼면 몸을 파도에 내맡긴 채 파도 따라 흔들려 봐. 자꾸만 파도가 미는 반대방향으로 몸을 버티려 드니까 멀미가 생기는 거야.”
파도 따라 흔들리듯 자신의 영혼에 이끌려 온 삶, 그것은 최고의 어찌 사냥꾼 조성호씨가 살아온 궤적이다. 그의 고향은 경남 함양. 육군 원사로 정년 퇴임한 부친은 아들들이 장군이 되어 자신의 꿈을 대신 이뤄주기를 원했다.
조성호씨는 자유분방한 삶을 원했고 아버지가 반대한 전라도 여자와 결혼했다. 부산에서 의약품 세일즈를 시작한 조성호씨는 승승장구하여 서른다섯 살에 제약회사를 인수해 사장이 되었다. 그의 삶이 주춤거리게 된 것은 바다낚시에 빠지면서부터. 갯바위에 서는 순간 술상무로 사는 인생이 갑자기 서글퍼지더란다. 회사 일은 뒷전으로 하고 욕지도, 거문도, 백도로 떠돌았다. 일주일만 바다를 보지 않아도 시름시름 아팠다.
“왜 신이 내린 애동무당이 그렇다잖아. 자꾸만 아프다고. 결국 좋든 싫든 무당이 되지 않음 안 된다고.” 낚시병 치고도 重症(중증)에 걸린 조성호씨의 방랑은 국토 남단 마라도에서 비로소 끝났다. 온갖 고기를 낚아도 채워지지 않던 갈증이 어찌와의 만남으로 해소된 것이다.
그는 새 사장을 선임한 뒤 회사 운영을 맡겨버리고 제주시 도남동에 낚시점을 차렸다. 부인 정부순씨도 하는 수 없이 남편을 따라 제주도로 넘어왔다. 13년 전 일이다.
마라도 양지민박 주인 한효석씨는 오후 4시의 마지막 여객선이 오기도 전에 일찌감치 문을 닫았다. 하루 네 번 객선이 닿을 때마다 관광객에게 회와 음식을 파는 것이 그의 일과지만 오늘 한씨가 기다리는 것은 객선이 아니라 작은 낚시보트다.
한효석씨도 어찌에 매료돼 삶의 노정을 바꾼 사람이다. 경기도 고양시에서 태어난 그는 어릴 때부터 골수 꾼이었다. 군대도 가기 전인 스물두 살에 낚시점을 차렸다가 돈만 까먹었다. 제대 후 1년 남짓 다니던 직장은 바다낚시에 빠지면서 때려치웠다.
그러다가 1993년인가, 광어를 수송하기 위해 제주도를 찾은 것이 한씨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다. 광어 출하작업이 하루 늦춰지는 바람에 얼씨구나 하고 떠난 마라도 낚시여행. 그곳에서 ‘검은 괴물’ 어찌를 낚고 압도당했다. “놈의 박력 앞에 혼이 나갔죠. 그날로 어찌와 열애에 빠져버렸습니다.”
그 후 뻔질나게 제주도를 오가던 그는 4년 전 아예 민박집을 인수하여 마라도에 정착했다. “돈을 선택하느냐 낚시를 선택하느냐 오래 고심했어요. 결국 낚시를 선택하게 되더라고요. 아내는 내 역마살에 지쳤는지 말릴 생각도 않더군요.”
마라도는 한국에서 어찌 회를 사먹을 수 있는 유일한 곳이다. 그러나 관광객들이야 어찌가 어떤 물고기인지 모르니 눈에 익은 돌돔, 방어부터 찾는다. 그래서 어찌가 돌돔보다 싸다. 3인분 횟감으로 알맞은 1kg(38~40cm)짜리가 8만원.
한씨는 말한다. “사람이나 물고기나 값을 결정하는 건 희소성이죠. 맛도 없는데 단지 귀하다는 이유로 비싸게 팔리는 고기들이 많아요. 그런데 너무 흔해도 값이 떨어지지만 어찌처럼 너무 귀해도 상품성을 못 가져요. 우리에겐 다행이죠. 어찌가 제값을 받으면 어선들이 달려들어 다금바리처럼 씨를 말릴 테니 낚시꾼에게 돌아올 몫이나 있겠어요?”
어찌! 녀석의 정식 학명은 ‘긴꼬리벵에돔’이다. 벵에돔의 亞種(아종)으로, 벵에돔이 붙박이성인 반면 긴꼬리벵에돔은 회유성이다. 그런데 벵에돔과 너무 닮았고, 제주도에서도 남쪽에서만 잡힐 만큼 드물어 別種(별종)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추자도, 거문도, 울릉도에서는 간혹 낚인다). 한국의 어류학자들은 1990년에야 이 고기를 발견하고 긴꼬리벵에돔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러나 모슬포의 어부들은 훨씬 전부터 긴꼬리벵에돔을 알고 있었다. 제주에서 벵에돔을 ‘귀릿’이라 부르는데, 모슬포 어부들은 마라해협에서 주로 나는 긴꼬리벵에돔을 ‘어찌’라고 불러온 것이다. 魚種(어종) 따위에 무심한 어부들이 굳이 두 물고기를 구분해서 부른 이유는 맛의 차이, 어찌가 귀릿보다 월등히 맛있기 때문이다.
그 맛을 경험한 사람들은 하나같이 “최고의 맛이다! 다금바리와 돌돔도 어찌에는 못 미친다”고 감탄한다.
어찌의 맛이 과연 어떻기에? 돔류와 다금바리를 위시한 능성어류는 白色筋(백색근)을 가진 흰살 생선이다. 백색근은 오래 사용하면 젖산이 축적되어 피로를 느끼므로 유영시간이 적은 토착성 어종에 발달한다. 이 백색근은 단단하여 食感(식감)은 좋으나 지방이 적어 좀 밍밍하다. 방어, 참치 등은 赤色筋(적색근)을 가진 붉은살 생선이다. 적색근에는 산소를 운반하는 헤모글로빈이 많아 산소 소모가 많은 고속유영에 유리하고, 젖산이 축적되지 않아 장거리 항해에 적합하다. 이 적색근은 지방이 많아 달고 고소하지만 비릿하고 물렁해서 식감은 떨어진다. 그런데 어찌의 살은 백색근과 적색근을 교묘히 버무린 ‘분홍색근’이다. 그래서 쫄깃하면서도 달고 기름지면서도 비린내가 없다.
※자세한 내용은 월간조선 2월호에서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