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세기 안에 같은 일이 또 벌어질까요?"

21일 잠실실내체육관에서 열린 서울 삼성-원주 동부전. 천적 맞대결로 일찌감치 팬들의 관심을 끌었던 이날 경기는 정작 승패보다 국내 프로농구 사상 최장 시간이 탄생하면서 화제를 모았다. 5차 연장전까지 치른 총 경기 시간은 3시간13분. 오후 7시에 시작한 경기가 10시가 넘어서야 간신히 끝났다.

이런 유례없는 사고(?)를 당한 프로농구연맹(KBL) 실무자들은 사태를 수습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농구 기록을 자동으로 저장하고 업데이트하는 프로그램이 다운된 것. 종전 최장 연장 기록이 3차 연장전이었기 때문에 5차 연장전은 미처 대응할 수가 없었다. 예상치 못한 천재지변에 진땀을 흘려야 했다. KBL 관계자는 22일 오전에도 "아직 문제가 해결 되지 않고 있다. 오후나 돼야 프로그램이 정상화될 것 같다"고 밝혔다.

어쩔 수 없이 현장에서 수작업으로 작성한 기록지도 전산작업이 아니다보니 잡음이 터져나올 수밖에 없었다. 선수 출전 시간과 종료 시간을 두고 의견이 충돌하기도 했다. 또 공식기록지에는 연장전 점수를 넣는 칸이 부족해 3차 연장전에 남은 점수를 합산해서 모두 기록해야 했다.

게다가 정작 경기 종료 후 1시간 가량이 지난 뒤에야 나온 공식기록지 역시 '공인된' 기록이 아니었다. KBL 관계자는 "현장 자료를 바탕으로 연맹에서 더블체크를 해야 한다"고 밝혔다.

현장기록원들의 고충도 컸다. KBL 통계요원들은 주로 전직 여자 농구 출신들로 이뤄져있는 주부들. 오랜 경기 시간에 퇴근이 늦어지면서 몸과 마음이 고달플 수밖에 없었다. 홈팀 삼성 구단 관계자는 "기록원들이 허리가 아프다며 힘들어한다"고 전했다.

농구 관계자와 귀빈들을 위해 마련한 생수도 동이 나 부랴부랴 공수해와야 했다. 쿼터가 끝나거나 타임 아웃 때마다 응원을 해야하는 치어리더들은 완전 녹초가 됐다.

무엇보다 2경기에 이를 정도로 장시간 경기를 치른 양팀 선수단의 고충은 가장 컸다. "다시는 이런 경기를 하고 싶지 않다"고 토로한 이광재(동부)는 연장전 도중 발에 쥐가 났지만 워낙 경기가 길어지다보니 다시 코트에 나서기도 했다.

양팀 합쳐 8명이 5반칙으로 퇴장당한 이날 경기서 선발 출전한 동부 윤호영은 무려 61분57초를 뛰며 겨우(?) 4반칙에 그쳤다. 삼성은 5명이 퇴장 당해 한 팀이 통째로 사라진 셈이 됐다. 삼성 안준호 감독은 경기가 끝난 뒤 가진 인터뷰에서 "3차 연장전"이라고 말했다가 급히 수정해야 할 정도로 정신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