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일 오후 서울 강북의 한 대학병원 이비인후과 외래. 코 감기·축농증 환자 등을 진료하던 의료진은 코 내시경을 비염(鼻炎) 환자 코 안으로 넣어 사용하고는 거즈로 쓱 한번 닦더니 바로 다음 환자의 코에 집어넣었다. 보기에도 불결할 뿐만 아니라 환자의 세균이나 바이러스가 다른 환자에게 옮아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코 내시경 검사를 받은 환자 박모(43)씨는 "만에 하나라도 결핵이나 간염·에이즈 바이러스가 옮겨 오면 어떻게 하냐"며 "불쾌하고 찜찜하다"고 말했다.
코 내시경은 코 안쪽 염증이나 종양 유무를 살펴보거나 부비동염(副鼻洞炎)을 진단하기 위한 검사다. 부비동은 코 안쪽과 연결된 얼굴 뼈의 빈 공간을 말하며 흔히 말하는 '축농증'이 잘 생기는 곳이다. 후두 내시경은 목 안쪽의 성대질환이나 후두암을 발견하기 위한 기본 검사다.
이 과정에서 내시경에 환자의 타액(침)은 물론 환자 상태에 따라 가래나 고름, 출혈성(性) 질환이 있는 경우에는 혈액도 묻을 수 있다. 따라서 내시경을 한번 사용한 후에는 5~10분 이상 소독액에 넣고 세척하거나 멸균기를 이용하는 것이 안전하다.
하지만 학계에 따르면 내시경 소독 장비를 외래 진료실에 비치한 이비인후과 병원은 10~20%에 불과하다. 대부분 알코올 거즈로 내시경을 닦고 다른 환자에게 사용하는 것이다. 작년 말 기준으로 전국 병·의원은 7500여 개의 후두 내시경을 사용하고 있으며, 코 내시경은 종합병원 300여 곳과 이비인후과 의원 1800여 곳에서 최소 한 대 이상 사용하고 있다(건강보험심사평가원).
시민단체 건상세상네크워크 조경애 대표는 "이비인후과는 내시경 소독 가이드라인조차 없을 정도로 위생에 무관심한 것이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더욱이 의료법상 의료기관은 병원 감염 예방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조항은 있지만 이를 어겼을 경우 처벌 규정은 명시돼 있지 않다. 의료전문 김선욱 변호사는 "식당에서 반찬을 재사용해도 규제를 받는 만큼 내시경 소독을 하지 않는 데 대한 처벌 규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