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인들은 문학의 원전이라 할 수 있는 말과 소리를 듣기 좋아한다. 보기보다 듣기를 좋아하는 문화적 관행이 근대 이후 독일의 음악을 발전시켰다고 볼 수도 있다. 독일어권에서는 작가나 시인이 신작을 출판하면 전국을 돌면서 '문학의 집'이나 서점에서 신작의 한 부분을 낭독하고 청중들과 대화를 나누며 서명 판매도 한다. 청중들이 입장료를 내고 이 작가 낭독회에 참석한다. 귄터 그라스와 같은 유명 작가의 낭독회에는 입장하지 못한 청중이 강당 앞 홀을 가득 메우고 화면을 통해 낭독회 실황을 듣는다. 우리나라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일이다. 시 낭송이면 몰라도 소설 낭독은 우리에게 아직도 낯설다.

독일의 중위권 이상 도시에는 대개 '문학의 집'이 있다. 지방자치 정부의 재정 지원과 자체 사업으로 경영되는 이 기관은 문학 유통구조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여름 휴가철만 빼놓고는 거의 연중무휴로 문학 행사가 열린다. 국내외 현역 작가들의 육성 낭독회가 주행사지만 고전 문학 작품을 성우나 배우가 읽어주고 비평가가 해설을 곁들이는 경우도 있다.

한국이 주빈국이었던 2005 프랑크푸르트 국제도서전 기간 중 열린 김광규 시인의 시 낭송회.

지난 2005년 프랑크푸르트도서전 한국 주빈국 행사 때 우리나라 시인과 작가들이 독어권을 순회하면서 한국 현대문학을 소개한 낭독회도 주로 현지 문학의 집에서 열렸다. 객석 배열에 따라 200명 내외의 청중을 수용할 수 있는 강당을 비롯해서 문화인들이 많이 드나드는 카페와 전시장을 갖추고 있다. 결혼식이나 생일 축하연, 세미나 장소로 대관을 해주기도 한다. 그리고 낭독회 출연자에게는 소정의 사례비가 지불된다.

신인 작가들에게는 순회 낭독 여행이 자기의 이름과 작품을 알리고 생계비도 벌 수 있는 기회가 된다. 순수문학의 보존과 저변 확대를 위한 구조적 지원책이 마련되어 있는 것이다.

작가 낭독회는 문학의 집뿐만 아니라 청중이 모일 수 있는 모든 장소에서 열린다. 브레멘 세계서정시대회 때는 시내 전차 안에서도 시를 낭독한 적이 있다. 의외로 많은 승객들이 귀를 기울였다. 또 어느 김나지움에서는 시 낭독이 끝날 때 마다 학교 강당을 가득 채운 청소년들이 환호하던 장면을 잊을 수 없다.

영상 매체나 대형 공연 행사에 중심을 빼앗기고 문화 예술의 주변으로 밀려나는 문학이 독자와 청중을 되찾으려는 이처럼 다양한 기획과 시도를 우리도 배워야 하지 않을까.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가꾸고 우리글의 품위를 선양하는 길은 바로 우리 문화의 정체성을 살리는 기본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