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일 모스크바 시내 남부 프로프소유즈나야 거리에 새로 점포가 문을 열었다. 점포에 붙은 광고는 "귀금속, 반지, 시계, 카메라 등 무엇이든 가져오면 달러든 루블화(貨)든 무조건 현금을 드립니다." 요즘 모스크바에서 눈에 띄게 증가하는 '롬바르드(ломбард·러시아어로 전당포)'다.
지하 1층에 위치한 약 10㎡의 롬바르드는 입구를 철창(鐵窓)으로 가린 채, 직원과 고객이 대화를 나눌 수 있을 정도의 공간만 열려 있다. 이날 오전 잔뜩 흐린 날씨에도 선글라스를 쓰고 이 롬바르드를 찾은 30대 주부 마르가리타(Margarita)는 금반지 3개를 내놓고 1만5000루블(약 79만원)을 빌렸다. 그는 "은행 간부였던 남편이 금융 위기의 여파로 두 달 전 실직(失職)해, 생활비가 떨어졌다"며 "모두 순금인데 돈이 적다"고 투덜댔다.
이곳 주인인 아르세니 미나예프(Minayev)씨는 환전소를 운영하다가, 한 달 전부터 업종을 바꿨다. 이미 3개의 롬바르드를 두고 있다. 그는 "하루 평균 90만 루블 정도를 빌려주는데, 이 중 0.5%만 영업이익으로 잡아도 점포 한 개당 한 달 수입이 4만5000루블로, 모스크바 시민의 평균임금(1만6600루블)보다 약 세 배 많다"고 했다. 조만간 휴일 없이 오전 9시부터 오후 7시까지 영업하는 롬바르드를 추가로 열 생각이다.
금융위기가 본격화한 10월부터, 모스크바에선 롬바르드가 '자고 나면 하나씩' 생긴다. 7일 현재 1000여 곳이 성업 중이다. 일간지 콤소몰스카야 프라우다에 따르면, 두 달 전 2800만 루블이던 1일 대부액은 지난 4일 4000만 루블로 급증했다.
롬바르드가 성업하는 또 다른 배경은 글로벌 금융위기에 따른 경기악화 외에도, 러시아인들의 소비습관과도 연결돼 있다. 1998년 디폴트(default·채무지불유예) 선언 당시 은행이 파산해 예금을 날렸던 경험이 있는 러시아인들은 저축을 꺼리고 전액 지출해 사치품을 구입하는 성향이 있다. 이 탓에, 가구마다 현금 보유가 거의 없어, 금융위기를 맞아 보유한 고가(高價)의 귀금속과 사치품을 롬바르드에 맡기고 돈을 꾸는 것이다.
은행들이 마구잡이식으로 신용카드를 남발한 요인도 있다. 카드 변제 능력이 없는 사람들이 구입 물품을 롬바르드에 내놓고 있다. 지난 10년간 시내 남쪽의 벨랴예바 지하철역 근처에서 롬바르드를 경영하는 야나 안토노바(Antonova)는 "전에는 주로 중장년층이 소련 시절 받았던 훈장이나 희귀한 카메라를 갖고 왔는데, 요즘은 카드로 산 차량을 맡기고 돈을 빌리려는 문의도 많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