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시대 제사는 형제들이 돌아가며 모셨다. '윤회제(輪回制) 제사'는 재산을 공평하게 물려줬던 풍습과 관련이 있었다. 그러나 고려 말 성리학이 들어오고 '주자가례(朱子家禮)'가 전해지면서 본부인이 낳은 큰아들, 적장자(嫡長子)가 제사를 주재하게 됐다. 신흥 사대부 집안에서 시작된 새 풍습은 조선시대 들어 양반 전체로 확산됐고 일반 백성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집안이 적장자로 이어져 내려간다는 '적적상승(嫡嫡相承)'은 중국 고대 왕실의 종법(宗法)에서 유래했다. 종자(宗子·종가 맏아들)가 조상 제사를 주재하며 종족(宗族)을 통솔하던 전통은 유교경전 '예기(禮記)'에 편입되면서 사회적으로 큰 힘을 발휘했다. 공자가 춘추시대 종법의 혼란을 강하게 비판한 것도 명분을 실어줬다. 주자를 비롯한 송(宋)나라 성리학자들은 사당 제사권과 문중재산 처분권을 종손에게 줘 위상을 더 강화시켰다.(이영춘 '차례와 제사')
▶우리나라에서 적장자 계승이 확실하게 굳어진 것은 조선 후기였다. 재산 상속 때 종손은 특별대우를 받았고 문중 내부는 물론 사회적으로도 우대받았다. 조선 초까지도 큰아들에게 손이 없으면 작은아들이 제사를 지냈지만 그 뒤론 양자를 들여 적장자를 만들었다. 서자(庶子) 차별은 말할 것도 없어, 적자가 있는데 서자로 대를 잇게 하면 처벌 대상까지 됐다.
▶대법원이 20일 선친의 유해를 모시고 제사를 지낼 권리를 놓고 이복형제들 간에 벌어진 소송에서 "상속인 사이에 협의가 되지 않으면 적자, 서자 관계없이 장남이 제사 주재자가 되고 아들이 없으면 장녀가 제사를 주재한다"고 판결했다. "종손이 제사 주재자가 돼야 한다"는 기존 판례를 변경한 것이다. 재판부는 "적자·서자 차별은 개인의 존엄과 평등을 기초로 한 오늘날 가족제도에 부합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제도와 법은 사회적 변화를 반영한다. 적장자 제사 주재가 도입된 게 고려 말·조선 초 역사 변동의 산물이듯 그 쇠퇴 역시 만인평등이라는 현대사회 흐름에 따른 것이다. 대법원은 그러면서도 장남의 우월한 지위는 인정했다. 이에 대해 일부 대법관은 소수의견에서 "상속인 사이에 협의가 되지 않으면 다수결로 정하거나 법원이 판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남의 특권도 무너질 날이 그리 멀지 않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