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파주에서 17년간 젖소를 키워온 김원명(44)씨는 난생 처음 전직까지 고려하고 있다. 작년부터 사료값이 꾸준히 올라 소 100마리를 더 이상 감당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작년 30㎏짜리 한 포대에 7500원 하던 배합 사료가 올해는 1만4100원까지 폭등했다. 배합 사료뿐 아니라 조사료(가공 풀)·영양제·약품 등 모든 것이 70% 가량 올랐다. 서울우유에 납품하는 우유 매출은 월 3600만원 정도. 지난 8월 서울우유측에서 가격을 20% 정도 올려줬지만, 여기저기서 받은 대출금 1억8000만원에 대한 매달 이자 150만원을 내고 나면 수중에 남는 것은 거의 없다.

소 가격도 동시에 형편없이 떨어졌다. 작년 140만원 이상 나갔던 600㎏짜리 암 젖소의 경우 올해 60만원에 팔리는 등 대부분 가격이 작년의 절반 수준이다. 특히 작년 55만원을 받았던 초유떼기 소(태어난 지 7일 미만)는 며칠 전 단돈 5만원밖에 받지 못했다. 기르는데 돈이 많이 들기 때문에 너나 없이 내놓지만 사는 사람은 없어 가격이 폭락한 것이다. 정씨는 "지금은 있는 소도 감당이 안 되기 때문에 5만원에 가져가 주는 것만 해도 고마울 지경"이라며 "빚만 없으면 아예 (낙농업을) 접어 버리는 것이 속 편할 것"이라고 말했다. 파주시에서는 이달에만 15~20개 소규모 축산 농가가 문을 닫았다.

지난 11일 오전 경기도 파주시 광탄면의 한 젖소 축사 모습.

젖소가격 5만원까지 떨어져

소 사료값이 폭등하면서 문을 닫는 축산 농가가 속출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전국 젖소 농가는 2006년 3월 8508가구에서 2007년 9월 7810가구, 올해 9월 7159가구로 꾸준히 줄었다. 경기도의 경우 작년 9월 3143가구에서 올해 같은 기간 2861가구로 1년 만에 9%가 폐업했다. 사료값은 오른 반면 소를 사려는 사람은 없어 소 가격이 폭락했기 때문이다. 초유떼기 젖소가 3만~5만원에 거래되는 등 "젖소가격이 개값만도 못하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현재 옥수수·콩 등 소 배합사료 원료는 미국·호주 등 외국에서 거의 전량 수입하고 있다. 농림수산식품부에 따르면 국제 곡물가격과 환율 폭등으로 작년 같은 기간 대비 사료가격은 평균 40% 가량 올랐다. 사료 수입 판매업체인 ㈜제이축산 전재호 부장은 "사료가격이 단시간에 워낙 올라 농가를 돌아다니면서 수금을 해도 거의 들어오는 돈이 없다"며 "수금을 다니다 보면 소 60~70마리를 키우는 소규모 농가의 경우 소리 소문 없이 소를 처분한 곳도 많다"고 말했다.

아예 생업을 포기하지는 못하더라도, 규모를 최대한 줄이는 농가도 많다. 경기도 안성에서 한우 230마리를 기르는 이주홍(53)씨도 최근 기르던 한우를 대대적으로 도축하기로 결심했다. 지금까지 고깃감으로 소를 내놓기보다 암소를 5~6번 임신시켜 송아지를 팔아왔지만, 이젠 사료값이 올라 기를수록 적자가 나기 때문이다. 이씨는 "작년까지 한 달에 1500만원 들어가던 사료값이 올해는 2500만원으로 뛰었다"며 "암소가 14개월 임신기간을 거쳐 송아지 한 마리를 낳을 때까지 사료값과 영양제를 통틀어 150만원이 들어가는데 송아지 한 마리 값이 120만원으로 떨어져 오히려 적자"라고 말했다.

볏짚 값도 덩달아 뛰어

수입 사료값이 워낙 오르다 보니 올해 들어 상대적으로 가격이 싼 국내산 볏짚이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지금까지 농가들은 영양가가 더 높은 수입 조사료를 선호했지만, 수입 사료값을 감당할 수 없자 저마다 볏짚 사용량을 늘린 것이다. 수요가 늘어나다 보니 볏짚 가격도 작년 같은 기간 1롤(지름1.2m, 두께 1.25m)당 4만5000원선에서 올해는 5만5000~6만원까지 급등했다. 경기도 포천시에서 한우를 기르는 박모(52)씨는 "수입 조사료를 쓰면 소의 영양 상태야 더 좋겠지만 사료값 때문에 할 수 없이 볏짚과 섞어 먹이고 있다"며 "볏짚 수요가 늘어날 것 같아서 미리 전라북도까지 연락해 필요한 물량을 확보해 놓은 것이 다행"이라고 말했다.

정부도 대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지난 3월 특별 사료 구매자금 1조5000억원을 금리 1%, 2~3년 상환으로 지원했다. 지금까지 5만5000여 농가가 지원받았다. 지난 4월에는 옥수수 등 수입 사료 곡물 19개 품목에 대해 관세를 폐지하기도 했다. 농림수산식품부 사료담당 안규정 사무관은 "정부에서 할 수 있는 조치는 대부분 취했다고 봐도 무방하지만 곡물가와 환율이 워낙 급등해 농가들의 어려움을 해소하기엔 역부족"이라며 "국제 곡물가격이 나아지고 있기 때문에 환율이 안정된다면 내년에는 사료값이 다소 내려갈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