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여론을 주도하는 워싱턴 포스트와 LA타임스, 시카고 트리뷴 등 유력지들이 잇따라 오바마 지지를 선언했다.

(연합뉴스 10월 19일 보도)


미국에선 대통령 선거가 임박하면 신문이 사설을 통해 특정후보 지지 입장을 밝히는 것이 하나의 전통이다. 지지 후보를 밝힐 때 이 시대가 어떤 지도자를 필요로 하고, 왜 특정후보가 그에 가까운 인물인지를 설명함으로써 여론형성에 상당한 영향을 끼친다. 그래서 대선 때가 되면 여론조사 지지율과 함께 각 언론사가 어느 후보를 지지하는지 입장을 표명하는 것이 큰 관심사다.

올해 미국대선에서 민주당의 오바마와 공화당의 매케인 후보 간의 지지율 격차는 여전히 유동적이지만 지지 언론사 수에서는 오바마가 대세를 잡아가는 듯한 느낌이다. 23일 현재 유력지인 '워싱턴포스트' '시카고트리뷴' '로스앤젤레스타임스' 등 124개 일간신문이 오바마 지지를 선언해 매케인의 42개를 크게 앞지르고 있다. 2004년에 부시를 지지했던 신문 가운데 27개가 오바마를 지지한 반면, 민주당 케리를 지지했던 신문은 4개만이 매케인 지지로 돌아섰다.

특히 17일 '시카고트리뷴'의 오바마 지지는 매케인에게 큰 타격을 주었다. '시카고트리뷴'은 이 신문을 키운 조셉 메딜이 공화당 창당멤버이자 링컨의 후원자였을 정도로 공화당과 깊은 인연이 있다. 이 신문은 '우리는 매케인을 좋아하지만 오바마를 지지할 수밖에 없다'는 식의 사설을 써 논설진의 고민을 드러냈다. 이 사설엔 '우리가 지지한 후보의 명단에 링컨과 함께 오바마를 올리게 된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는 대목이 나온다.

미국 신문이 대통령 후보에 대해 지지를 표명하는 행위는 건국 초기부터 시작됐다. 워싱턴 대통령이 초대 재무장관으로 발탁한 알렉산더 해밀턴과 부통령을 지낸 애런 버가 1804년 권총 결투를 벌인 끝에 해밀턴이 사망한 사건의 배경에도 정파언론의 역사가 깔려 있다.

초기 신문들은 대부분 특정 정파를 일방적으로 옹호했을 뿐 아니라 정치인 자신이 신문을 소유하는 경우도 흔했다. 해밀턴과 버도 유력지 사주로서 정적인 상대방을 음해하고 공격하는 데 신문의 총력을 동원했다. 버는 대통령 결선투표에서 해밀턴의 방해로 제퍼슨에게 패하자 앙심을 품게 됐던 것이다.

20세기 초반까지 극성을 부렸던 미국 언론의 당파적 선정주의는 역설적으로 객관주의 저널리즘이 대두하는 토양이 된다. 사실과 의견을 분리해, 기사에는 각 정파의 목소리를 균형되게 반영하고 의견은 사설과 칼럼에 국한하려는 노력이 시작된 것이다.

그러나 미국 언론 중에는 여전히 사실보도에 의견이 뒤섞이거나 정파 간 균형을 잃는 사례가 적지 않다. 루퍼트 머독이 인수한 '뉴욕포스트'와 '폭스TV' 등은 논평이 아닌 경우에도 민주당에 적대감을 드러낸다. '뉴욕포스트'는 이번에도 매케인을 지지했는데, 지지 신문 중 가장 많은 부수인 70만부를 발행한다. 2004년에는 민주당의 케리 지지 신문이 208개, 부시 지지 신문이 189개로 큰 차이가 없었다. 실제 선거에서는 부시가 이겼다.

미국의 권위지들은 현정권이나 후보와의 친소관계가 아니라 후보의 능력과 정책을 평가해 지지 후보를 결정한다. 언론사가 지지한 후보가 선거에서 패하더라도 언론사는 이미지에 타격을 받지 않는다.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는 지난 대선에서 두 번 내리 민주당 후보를 지지했고 그들이 선거에서 패했으나 신문의 권위가 손상됐다는 얘기는 들어보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