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쳐야 미친다(不狂不及)》(정민 지음·푸른역사)를 처음 읽고 우리가 흔히 실학자로 부르는 조선시대 지식인들의 내밀한 사생활과 신분을 초월한 우정, 광기와 열정, 요샛말로 하면 마니아의 세계에 대해 깊이 매료된 적이 있다. 조선시대에도 이런 때가 있었다니,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 후에 나온 같은 저자의 《18세기 조선 지식인의 발견》(휴머니스트)을 읽으면서는 이 저자야말로 그 시대를 제멋대로 살다 간 기인 괴짜들에게 미쳐서 국내 국외, 멀고 가까운 데를 가리지 않고 발로 쫓아다니면서 시간의 먼지 속에 묻힌 그들의 자취를 찾아내서 온전히 복원해 마침내 이 한 권의 책에 이르렀구나, 그의 광기 어린 열정에 공감하게 되었다.

저자는 머리말을 통해 10여 년간 박지원 이덕무 박제가 등에 관한 공부를 하는 과정에서 이전 시기와는 전혀 다른 문화현상들, 무어라 설명할 수 없는 격정과 열망이 이들 글의 저변에 이글거리고 있음을 발견하고 "도대체 이 시기에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걸까? 시야를 좀 더 넓혀 18세기 문화 전반에 대해 천착해 보아야겠다"고 생각했노라고 이 책을 묶은 동기에 대해 밝히고 있다. 여기서 나는 "그가 썼다"고 말하지 않고 "묶었다"고 말하는 것은 이 책이 "18세기 문화변동기의 문화현상을 다룬 13편의 논문으로 이루어졌다"고 저자가 밝혀놓고 있기 때문이다. 논문이라면 이미 학술지나 학계에 발표한 것일 테니 읽기에 어려울 것 같은 선입관을 갖게 되나 그렇지 않다.

그의 전작 《미쳐야 미친다》와 겹치는 부분도 더러 있지만 더 깊이가 있고 더 넓으며 새롭게 발굴한 자료까지 보탰다. 남이 하는 것을 흉내 내거나 평범하게 보이는 것을 극도로 싫어한 당시 지식인과 기인·전문가들의 독창적인 생각, 그들의 수집벽과 정리벽, 기록벽, 꽃처럼 사소한 것에까지 미친 애호벽, 그리고 당시 체제의 검열에 걸린 발랄하고 사실적인 문장 등에서 그는 근대의 에너지를 읽어낸다. 불행하게도 정조(正祖)의 승하와 동시에 18세기는 막을 내리고 기인들뿐 아니라, 독학으로 수학·기하학·천체물리학에 통달하여 천민신분임에도 불구하고 높이 등용되었던 천재까지 영락하여 거의 굶어 죽게 되는 비극을 맞는다.

지금 우리는 단군 이래 최고로 잘살 뿐 아니라 지구상의 많고 많은 나라 중에서도 열 손가락 안에 드는 풍요를 누리고 있다. 그동안 한눈 한 번 안 팔고 오로지 돈만을 신봉해온 결과다. 잘살건만 한 치 앞이 안보이게 불안하고 답답하고 자꾸만 초라해지는 건 무슨 까닭인가. 선택의 여지 없이 자본주의를 신봉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우리의 분단 상황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만약 정조시대의 문예부흥기가 순조롭게 좋은 정치를 만나 근대화를 이룩하면서 주권을 유지해 왔더라면 일본에게 나라를 빼앗기는 치욕도 안 겪었을 것이다. 일본의 식민지가 되지 않았으면 나라가 둘로 쪼개지는 일 따위가 일어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아아, 분단만 없었더라면 지금쯤 우리는 얼마나 작지만 아름다운 나라가 되어 있을 것인가. 과거에다가 만약을 붙여 가정하는 것처럼 부질없는 짓은 없는 줄 아나 이 돈만 아는 세상을 살기가 하도 편치 못하여 해보는 소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