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 서울 구로구의 한 지하철역 앞에서 만난 어머니 조경애(가명)씨는 서두르는 기색이었다. “있을지 없을지는 확실히 몰라요.” 그녀의 눈은 빨갛게 충혈돼 있었다. 어젯밤 새벽 2시까지 신림동 일대를 뒤지느라 잠을 못 잔 탓이다.

택시를 잡아탄 어머니는 근처 찜질방으로 향했다. 아들 이시영(가명)씨가 거기 있을지 모른다고 했다. 어떻게 아느냐고 물었으나 어머니는 대답을 거부했다. 혹시나 아들이 기사를 보고 어머니가 그 방법을 쓰지 못하도록 피해다닐 수 있기 때문이었다. 어머니는 아들이 인터넷에 뜨는 모든 뉴스를 다 본다고 했다.

그녀의 아들은 29세. 5일 가출해 4일간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나이 29세에 가출? 고개를 갸웃하니 어머니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고 했다. 지난 2월엔 6개월간 연락두절이었던 아들을 중랑구의 한 PC방에서 발견해 데리고 왔다. 그 뒤로 잠잠했으나 이번에 또 집을 나선 것. “그때까지만 해도 회사 잘 다니고 그랬는데… 그놈의 컴퓨터 때문에” 어머니가 말끝을 흐렸다.

찜질방에 도착한 어머니는 남자 수면실을 확인해달라고 했다. 그러나 수면실 안에선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어차피 모두 자고 있어 어머니를 안으로 불렀다. 약한 휴대폰 불빛으로 발을 확인하던 어머니는 문에서 제일 가까운 침대에 누워있는 한 남성을 가리켰다. “맞아요, 맞아. 발목에 상처가 있는 게.” 어머니의 목소리가 떨렸다.

수면실이 잘 보이는 곳에 앉은 어머니는 자세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지방대를 나온 아들은 3년 전 서울로 다시 돌아와 공인중개업소에 취직했다. 큰 말썽을 부린 적이 없었던 아들이었다. 가끔씩 컴퓨터 앞에 늦게까지 앉아 있어 아침에 간혹 지각하긴 했으나 그 이외엔 별다른 징후를 보이진 않았다.

그러나 작년 8월, 집을 나간 아들은 일주일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았다. 실종 신고를 했으나 경찰은 아들의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별 신경을 쓰지 않았다. 어머니는 아들을 직접 찾아 나섰다. 평소 아들이 컴퓨터를 많이 하는 것을 알았던 어머니는 인근 PC방을 뒤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6개월, 어머니는 한 PC방에서 아들을 발견했다.

6개월 만에 발견한 아들은 살이 10kg 가량 빠져있었다. 이후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아들은 통장에 들은 200만원으로 생활을 해왔다. PC방과 찜질방을 오가며 이 돈을 다 썼고, 어느 새 단골이 된 PC방에서 외상으로 지냈다. 잠은 PC방 소파에서 잤다. 이 외상도 쌓여가자 아들은 아예 PC방에 취직해 생활을 해왔던 것.

어머니는 다시 찾은 아들을 지난 7월 중순 직업훈련소로 보냈다. 인터넷중독예방상담센터도 아들과 함께 방문했다. 아들 역시 스스로를 고치고 싶다고 했다. 가끔씩 자기 스스로가 통제가 안 되는 게 너무 싫다고 했다.

그러나 6주도 채 지나지 않아 아들이 또 외출했다. 바로 이번이다. 말을 하는 내내 어머니는 무슨 소리만 나면 자꾸 수면실 쪽을 바라봤다. 어머니는 인터뷰를 응한 이유에 대해 “제가 서울에 있는 PC방을 다 돌아봤는데, 제 아들 같은 사람이 너무 많아요. 이걸 좀 알렸으면 하는 마음에…”라고 답했다.

한 시간쯤 지났을까, 한 찜질방 직원이 수면실 청소를 위해 문을 활짝 열고 불을 켰다. “저 이제 아들 깨워서 데리고 가야 될 것 같아요.” 밖에서 몰래 지켜본 아들은 청바지와 티셔츠 차림이었다. 중독자라고 보기 힘든 말쑥한 차림이었다. 어머니는 아들의 팔을 꼭 잡고 있었다.

◆성인 99만여 명도 인터넷중독

인터넷중독에서 어른들이라고 자유로울 리 없다. 한국정보문화진흥원의 조사에 따르면 지난 2007년 만19세~39세 사이에 있는 성인의 6.5%(고위험군 1.4%, 잠재적 위험군 5.1%)가 인터넷중독 상담이 필요하다. 14.4%인 청소년의 인터넷중독 비율에 비교하면 절반밖에 안되지만 성인의 인터넷이용인구가 청소년의 2배임을 감안하면 실제 상담이 필요한 사람은 99만여명으로 청소년과 다를 바 없다.

더욱이 성인이 인터넷에 중독됐을 경우 청소년보다 더 피해가 막심하다. 한국정보문화진흥원 박효수 정보화역기능대응단장은 "인터넷 도박이나 쇼핑 등 현실세계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분야에 빠지는 경우가 많아 역작용이 크다"고 말했다. 또 성인인 만큼 청소년에 비해 규제를 적게 받는 점도 중독의 위험성을 크게 한다.

실제 2005년 대구의 한 PC방에서 20대 청년이 잠도 자지 않고, 제대로 먹지 않은 채 50시간 게임에 몰두해 사망한 사건이 있었고 같은 해 부모가 생후 넉 달된 딸을 집에 둔 채 PC방에서 게임을 하다 딸이 질식사한 경우도 있었다. 작년 11월 제주도에선 33세 남성이 피를 토한 채 PC방 의자에 누워 숨져 있는 것이 발견되기도 했다.

지난 6월 인터넷중독예방상담센터에 상담을 요청한 김민영(가명·여·30)씨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김씨는 작년 인터넷 카페에서 만난 여진기(가명·32)씨와 결혼한 뒤 올해 초 딸아이까지 출산했다. 여씨가 회사를 나간다고 해놓고 사실은 PC방에 가 있다는 것을 김씨가 안 건 올 3월. 1년 가까이 여씨는 부모에게 받은 용돈을 김씨에게 주면서 회사를 다니는 척 했으나 부모가 며느리에게 이 사실을 알리면서 들통이 난 것이다.

김씨는 여씨에게 PC방을 계속 다닐 거면 자신과 이혼하자고 했고, 놀란 여씨는 다시는 PC방에 가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지난 5월 인근 백화점 주차경비원으로 취직한 여씨는, 그러나 다시 PC방 출입을 하기 시작했다. 이에 김씨가 상담을 요청한 것.

여씨 부부의 상담을 맡은 상담원은 “여씨의 중독 척도를 테스트해본 결과 잠재적 위험군으로 측정이 됐다”며 “굉장히 위험한 건 아니나 자신이 조절을 못하기 때문에 상담은 게임을 대신할 수 있는 대안활동을 찾는 것과 아내와의 관계 회복에 초점을 맞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성인의 경우 조절이 안 되면 여씨 부부처럼 가족 관계 자체가 위험한 상황에 처할 수도 있기 때문에 청소년보다 더 느끼는 책임감이 크다”고 덧붙였다.

◆성인 상담건수, 청소년의 5%에 불과

그러나 성인은 청소년에 비해 인터넷중독으로부터 훨씬 무방비 상태에 놓여 있다. 고영삼 인터넷중독예방상담센터장은 “성인은 자발적으로 와야 하는데 인터넷 중독을 심각하게 여기지 않고 스스로 자제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상담원을 잘 찾지 않는다”고 말했다.

실제로 올해 상반기(2008년 7월 기준) 인터넷중독예방상담센터에서 실시한 초중고생의 상담건수가 3만2232건에 달한 반면 성인의 상담 건수는 1660건이었다. 청소년 상담건수의 5%에 불과한 것.

설사 상담센터에 온다 하더라도 이시영씨나 여씨 부부처럼 이미 어느 정도 일상생활에 장애가 있는 상태에서 오는 경우가 많다. 박명진 선임연구원은 “성인들은 자발적으로 오기 힘든 만큼 아내나 가족이 주의 깊게 살펴 상담을 요청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