쇠고기 파동으로 촉발된 이번 '촛불시위'에서 '집단지성'이라는, 조금 생소한 말이 등장했다. 사전적 의미로 '집단지성'이란 '다수의 개체들이 차별화와 통합이라는 메커니즘을 통해 경쟁이나 협력을 하게 되고, 그 결과 전체 집단의 지적 능력이 개개의 개체가 갖는 지적 능력을 넘어서는 현상'을 말한다. 이런 현상은 박테리아부터 식물, 동물, 인간, 컴퓨터 등 거의 모든 범주에서 광범위하게 나타난다.
학문적으로 먼저 알려진 집단지능의 예는 개미나 꿀벌과 같은 사회적 곤충이다. 1911년 곤충학자 휠러는 개개의 개미들은 지능을 갖지 않지만, 이들이 모인 전체 개미 집단은 거대한 콜로니(Colony)를 만들거나 이를 유지할 수 있는 높은 단계의 지적 능력이 발현되는 현상에 주목했다. 그는 이를 '초유기체성(superorganism)'이라고 설명했다. 개미 집단이 이렇게 개체의 능력을 뛰어넘어 하나의 초유기체적 행동을 할 수 있는 이유는 '페로몬'이라는 화학물질을 분비하면서 서로 의사소통을 하기 때문이다. 개미는 다양한 상황에 따라 10~20종류의 페로몬을 방출하는데, 동료 개미들이 이를 감지해 유인, 동원, 경보, 다른 계급 인지, 애벌레를 보살핌과 같은 높은 단계의 사회적 생활을 할 수 있다.
인간 사회에는 '집단지능'이라는 말보다는 '집단지성' 또는 '군중의 지혜'라는 개념이 더 많이 쓰인다. 인간이 집단화됐을 때 나타나는 지성의 힘을 역사적으로 처음 발견한 사람은 아이러니컬하게도 '우생학'의 창시자인 골턴이었다. 그는 사회의 발전을 위해서는 '우성의 유전자'를 가진 지식인들이 필요하며 더 나아가 사회 발전에 걸림돌이 되는 '열성 유전자를 가진 우매한' 사람들의 수는 줄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자기 이론의 타당성을 증명하고 싶었던 골턴은 1906년에 영국 서부의 우시장(牛市場)에서 '황소 무게 맞추기' 경기를 개최했다. 황소의 무게를 맞추는 사람이 그 황소를 차지하는 경기였다. 여기에 787명의 군중과 몇몇의 황소 전문가들이 참가했는데, 누구도 황소의 무게를 맞추지 못했다. 골턴은 '우성의 유전자'를 가진 황소 전문가들이 승리하지 못한 데 실망했지만, 적어도 군중들의 우매함은 증명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황소 전문가들이 제시한 수치들과 군중이 제시한 수치들의 평균값을 각각 구해봤다. 결과는 놀랍게도 군중의 승리였다. 787명의 군중들이 써낸 황소 무게의 평균값은 실제 황소 무게인 1207파운드와 단지 0.8%의 차이만 있는 1197파운드였다. 이 결과에 골턴은 당황했다. 그러나 그는 개개의 사람은 우매할지라도 집단의 수준에서는 '높은 단계의 지성'이 나타날 수 있고, 이를 'Vox populi('민중의 소리'라는 뜻의 라틴어)'라고 인정했다.
이와 유사한 실험을 몇 년 전 독일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도 한 적이 있다. 종목은 한 해에 태어난 신생아 수, 특정한 시간대에 다리를 통과하는 자동차의 수, 특정 집단의 체중 등이었고, 보건복지부장관, 교통전문가, 의사 등이 전문가로 나섰다. 결과는 거의 모든 종목에서 임의로 모집한 군중의 승리였다.
그렇다면 집단화된 군중들은 왜 전문가들보다 높은 지성을 가질까? 사회학자 스로비키가 2004년에 펴낸 '군중의 지혜(The Wisdom of Crowds)'라는 책에 따르면, 그 이유는 첫째 광범위한 사람들이 모여 있는 집단은 전문가 집단이 내리는 판단보다 정치적으로 중립적이며, 신뢰성이 높고 의견을 수렴하는 속도도 더 빠르기 때문이라고 한다. 둘째 군중들은 혼잡한 식당이나 교통 상황에서도 충돌 없이 행동할 수 있는 '조정(Coordination)'의 능력을 가지며, 자유시장이나 인터넷 공동체에서처럼 중앙통제나 특정의 규칙이 없어도 신뢰성 있는 네트워크를 형성할 수 있는 '협동(Cooperation)'의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모든 군중집단의 의견이 항상 지혜롭지 만은 않다. 스로비키는 "대중들이 정보를 얻는 방식이나 사고가 지나치게 동질화되고, 대중을 지휘하는 중앙통제가 등장하거나 이와 반대로 지나치게 분산될 때, 또는 집단 히스테리가 등장할 정도로 지나치게 감정적으로 변하면 이 집단은 더 이상 '지혜'를 만들어내지 못 한다"고 경고했다. 지금의 '촛불시위'나 앞으로 등장할지도 모를 다른 촛불시위는 이 점을 염두에 뒀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