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 두 마리가 갈대 이삭 하나를 놓고 각축을 벌인다. 게와 갈대는 흔히 함께 그려지는 짝이다. 비교적 단순한 조합이다. 무슨 뜻일까?
먼저 갈대의 의미를 읽어보자. 갈대는 한자로 로(蘆)다. 게가 갈대를 물어 전하면 '전로(傳蘆)'인데, '전려(傳�)'란 말에서 나왔다. 로(蘆)와 려(�)는 우리말 음으로는 달라도 중국음은 모두 '루'다. 전려는 예전 과거시험을 볼 때 합격자를 발표하던 의식이다. '려'는 전고(傳告), 즉 전하여 알린다는 뜻. 궁궐의 전시(殿試)에서 황제께서 납시어 합격자를 발표한다. 황제가 이름을 부를 때마다 각문(閣門)에서 이를 이어받아 외쳐, 섬돌 아래까지 전한다.
그러면 호위 군사가 일제히 큰 소리로 그 이름을 외친다. 한 사람씩 호명될 때마다 각문 밖에선 탄식과 환호가 엇갈렸다. 생각만 해도 근사한 장면이 아닌가. 이후로 전려는 과거에 장원으로 급제한 사람을 부르는 호칭이 되었다. 갈대의 의미는 그렇다 치고 왜 하필 갈대를 무는 것이 게였을까? 게는 한자로 해(蟹)다.
예전 과거 시험은 각 지역의 향시(鄕試)에서 합격한 사람만 중앙으로 올라가 전시(殿試)에 응시할 수 있었다. 이것이 발해(發解)다. 해(解)와 해(蟹)의 음이 같다. 발해에 뽑힌 사람[게]이 다시 전시에서 전려(갈대), 즉 급제하기를 바란다는 뜻이다. 게다가 게는 등딱지가 갑옷처럼 되어있어 그 자체로 갑제(甲第)의 뜻도 있다.
이제 화제를 풀 차례다. 여백에 경쾌한 필치로 "바다 용왕 앞에서도 옆으로 걷는다(海龍王處也橫行)"는 글귀를 썼다. 횡행개사(橫行介士)는 게의 별명이다. 게는 옆으로 걷는다. 말 그대로 횡행(橫行)한다. 개사(介士)는 강개한 선비란 뜻이지만 집게까지 든 갑옷 입은 무사이기도 하다. 횡행한다는 것은 제멋대로 거리낌 없다는 말이다. 게 그림의 화제에 횡행사해(橫行四海)라 쓴 것도 많은데 천하를 마음껏 주름잡으란 뜻이다.
그러니까 화제의 의미는 임금 앞에서도 주눅들지 않고 당당히 바른 말을 한다는 뜻이 된다. 당나라 때 시인 두목(杜牧)의 '영해(�蟹)' 시의 한 구절이다. 원시는 이렇다. "푸른 바다 못 봤어도 진작 이름 알았나니, 뼈 있으되 도리어 살 위로 생겨났네. 생각 없이 번개 우레 겁먹는다 하지 마소. 바다 용왕 앞에서도 옆으로 걷는다오(未遊滄海早知名, 有骨還從肉上生. 莫道無心畏雷電, 海龍王處也橫行)." 모든 동물은 살 속에 뼈가 있다. 게는 뼈 속에 살이 있다. 걸핏하면 구멍 속으로 쏙쏙 숨는다고 겁쟁이라 얕보지 마라. 바다 용왕 앞에서도 삐딱하게 옆으로 걷는 강골이라는 말씀이다.
갈대 이삭을 문 게로 과거 급제를 축원했다. 두 마리를 굳이 그린 것은 소과 대과에 연달아 합격하란 속뜻이 있다. 합격에서 그치지 않고 화제로 급제한 후에 천하를 주름잡는 큰 인물이 되어 임금 앞에서도 직언하는 올곧은 선비가 되라는 주문까지 담았다. 게의 두 가지 상징을 절묘하게 겹쳐놓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