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 황제' 로버트 파커(Parker·61)씨가 한국에 왔다. 미국 와인평론가인 파커씨의 와인 비평은세계적인 권위를 자랑한다. 그의 비평기준인 100점 만점의 '파커 포인트' 점수에 따라 와인의 생사가 엇갈리기도 한다.
예를 들어 1994년 파커씨는 미국 캘리포니아의 신생 와이너리(와인 양조업체) '시네 쿠아 논(Sine Qua Non)'이 처음 내놓은 와인에 95점을 줬다. 그 직후 뉴욕·런던·파리·도쿄에서 와이너리에 전화가 폭주했고, 와인은 이틀 만에 매진됐다.
이번 방한은 삼성카드·신라호텔과 전략적 제휴를 맺기 위한 것. 28일 낮 서울 신라호텔에서 그를 만났다.
"전 세계 와인업계에서 쏟아지는 너무나 많은 관심이 부담스럽고 때론 두렵습니다. 그렇지만 그만큼 나의 평가를 신뢰한다는 증거니까 뿌듯하기도 합니다." 파커씨는 "세계 와인 소비자들이 나의 판단을 믿는 것은 내가 독립성을 확보하고 지키려 노력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실제 파커씨는 와인을 와인업자에게서 제공받지 않고 직접 구매하는 것은 물론, 와인 산지를 방문할 때도 여행 경비 일체를 스스로 부담한다.
파커씨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와인업자들이 높은 파커 포인트를 받으려고 그의 입맛에 맞춰 와인을 만들고, 이 때문에 전 세계 와인의 개성이 사라지고 있다"는 비난도 등장했다. 이런 현상을 빗댄 '파커화(parkerize)'란 단어까지 생겨났다. 이에 대해 파커씨는 "위대한 와인은 토양과 포도 품종의 특징을 존중할 때 탄생한다"며 "훌륭한 와인 양조업자는 절대로 누구의 입맛에 맞추지 않는다"고 했다.
파커씨는 유럽 고급 와인과 아시아 음식도 잘 어울린다고 말했다."김치처럼 맵고 자극적인 음식에는 리슬링, 게부르츠트라미너 같은 화이트 와인, 프랑스 론과 보졸레 지역 레드 와인이 어울린다"고 했다. 갈비와 불고기를 즐겨 먹는다는 파커씨는"한식은 사실 내 딸이 더 잘 안다"고 말했다.
그의 딸 마이아(Maia·21)씨는 파커씨가 1987년 한국에서 입양했다. 세계 최고 와인평론가의 딸은 아버지 곁에 앉아 "아직 와인에는 취미가 없다"며 "화이트 와인은 좋아하지만 레드 와인은 (떫은 맛 때문에) 많이 마시기 힘들다"고 말했다.
파커씨는 "마이아는 내가 유명한 와인평론가라는 것보다 일본 와인 만화 '신의 물방울'에 내가 등장한 것에 더 흥분한다"면서 웃었다. 파커씨는 "마이아가 이제 겨우 스물한 살이니 앞으로 얼마든지 와인 경험을 쌓을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