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클론 나르기스(Nargis)가 미얀마 남부를 강타한 지 1주일. 양곤 시내에서 1시간 거리인 딴린(Thanlyin) 시로 가는 도로변은 마치 폭격을 맞은 듯 폐허로 변해 있었다. 노면은 곳곳이 패여 나가 딴린에 도착할 때까지 차는 계속 춤을 췄다. 도로변 가로수나 전신주는 제대로 서 있는 게 이상할 정도였다. 어른 양팔 길이의 3~4배가 넘는 둘레의 아름드리 나무가 뿌리째 뽑혔거나, 허리가 꺾인 채 흉물스럽게 방치돼 있었다.

한국 NGO단체로는 처음 미얀마에 들어온 '한국기아대책' 구호팀과 함께 9일 오후 딴린 시 테야아수(Theyaasu) 마을을 찾았다. 약 400가구, 2000명의 주민들이 사는 이 마을에도 한숨과 절망이 가득했다. 멀쩡한 가옥과 건물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딴린교회에서 만난 투와마(Twama) 목사는 강풍이 몰아닥쳤던 지난 3일 오전을 기억하며 몸서리를 쳤다. 시속 215㎞가 넘는 강풍을 동반한 나르기스는 지난 2일 밤 미얀마 남부 이라와디 삼각주에 상륙한 뒤, 3일 오전 양곤 외곽 지역을 지나갔다. 주민들은 "비보다 바람이 너무 무서웠다"고 입을 모았다. 투와마 목사는 "교회 지붕이 날아갔고, 교회 앞마당의 큰 나무 3그루도 뿌리째 뽑혀 쓰러졌다"고 말했다.

사이클론은 지나갔지만, 마을은 예전과 같은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해졌다. 초등학교만 마치고 양곤 시내 미용실에서 8년째 일하고 있는 카인(Kayin·여·17)은 "오늘 하루 종일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고 하소연했다.

양곤 시내에서 1주일 동안 발이 묶였다가 이날 집으로 돌아온 도닐라(Donyla·여·53)는 "집으로 오는 시외버스 요금이 1주일 만에 200짜트(1짜트=약 1원)에서 500짜트로 뛰었다"면서 "친척에게 겨우 돈을 빌려 돌아왔는데, 집에 돌아와 보니 숟가락 하나 남지 않고 완전히 다 날아갔다"며 울먹였다.

미얀마는 사이클론이 강타한 이후 살인적인 물가에 시달리고 있다. 쌀, 석유, 생수 등 모든 생필품이 천정부지로 뛰고 있다.

1갤런(약 3.6L)에 3000짜트이던 가솔린은 암시장에서 1만2000짜트로 4배나 올랐다. 소금값은 1㎏에 200짜트에서 2000짜트로 10배나 뛰었다. 소금의 주 생산지인 이라와디 삼각주 일대 염전이 대부분 물에 잠겼기 때문이다.

딴린(미얀마)=유하룡 특파원

상황이 이런데도 외부 지원은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정권 붕괴를 두려워하는 미얀마 군정은 국제구호단체에 위한 구호물자 직접 배분을 거부하고 있다.

세계식량기구(WFP)는 9일 양곤에 보낸 구호물자가 공항에서 군정 당국에 압류되자 "미얀마 당국의 보장이 있기 전까지 구호물자 공수를 중단하겠다"고 선언했다. 딴린 마을의 모(Moe·여·55)는 "예전엔 정부에서 군인들이 나와 쌀을 나눠주기도 했는데, 지금처럼 막상 필요할 땐 코빼기도 비치지 않는다"고 비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