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전쟁 초기 서울에 남아 있던 고아 1000여명을 제주도로 피신시킨 한국판 '쉰들러 리스트'의 주인공 고(故) 러셀 브레이즈델 목사의 아들 카터 브레이즈델(72)씨가 한국을 찾았다.
1일 광주광역시에 있는 사회복지법인 '충현원'에서 열리는 러셀 목사의 사망 1주기 추모식 및 그의 회고록 '전란과 아이들' 출판기념회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자신도 한때 목사였다가 은퇴한 카터씨는 "한국 고아들과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가 담긴 이 회고록이 미국보다 한국에서 먼저 나오게 돼 정말 기쁘다"면서 "하늘에 계신 아버지도 틀림없이 웃고 계실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당시 AP 통신 등이 '아이들 수송 작전(Operation Kiddie Kar)'이라고 보도한 브레이즈델의 활동이 반세기 이상 다른 미 공군 장교의 업적으로 잘못 알려지게 된 비화(�話)도 공개했다.
브레이즈델 목사는 미 공군의 군목으로 6·25 전쟁에 참전, 서울에 있는 전쟁 고아들을 보살피다 중공군 개입으로 연합군이 후퇴하자 1950년 12월 20일 극적으로 1000여명의 고아들을 제주도로 피신시켰다.
이 이야기는 1957년에 개봉된 영화 '전송가(Battle Hymn)' 때문에 한국인들에게도 널리 알려졌지만, 정작 주인공이 브레이즈델 목사였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됐다'는 장면으로 시작하는, 록 허드슨 주연의 이 영화에는 딘 헤스 대령이라는 한국군 참전 미 공군 장교가 주인공으로 등장하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헤스 대령이 쓴 회고록을 바탕으로 할리우드가 제작한 것이다.
카터씨는 "아버지도 그 영화가 잘못된 것임을 알았지만, 영화가 개봉된 이후 수익금이 전부 한국 고아들을 위해 사용될 거란 말을 믿고 아무런 문제 제기도 하지 않은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 같은 사실을 증명하는 편지도 공개했다. 1957년 브레이즈델 목사는 고아수송작전 때 함께 일했던 스트랭 하사와 편지를 주고받았는데, 그 내용 중에 "선행이란 달러나 명예 등으로 측정될 수 없는 그 자체의 보상이 있다. (헤스 대령의) 책과 영화의 모든 수익금이 고아들에게 가도록 돼 있다. 지금 시점에서 비판하거나 잘못된 부분을 바로잡는 식으로 이슈를 흐리고 싶지 않다"는 그의 심정이 담겨 있다.
카터씨는 "헤스 대령도 한국전에서 공을 세우고 나중에 한국인 고아를 입양한 훌륭한 분"이라며 "당시 할리우드가 대중적이고 드라마틱하게 영화를 만든 것 같다"고 말했다.
특히 헤스 대령은 한국 정부로부터 훈장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지만, 브레이즈델 목사는 한국정부로부터 어떤 훈장이나 포상도 받지 않았다.
그는 이어 "이번에 책(전란과 아이들)을 통해 알려질 '진짜 이야기'는 그 영화보다 훨씬 더 재미있을 것"이라며 "아버지는 내게도 언제나 영웅이었다"고 말했다. 브레이즈델 목사의 회고록에 대한 한국어 판권은 그의 유언에 따라 옛 고아원 체험시설을 복원하는 충현원측에 주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