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프랑스 고등학교의 졸업자격시험인 바칼로레아(baccalaur�at)가 실시된 지 200주년을 맞았다. 하지만 해마다 6월에 치르는 이 시험이 80% 안팎의 높은 합격률을 보이는 데 반해, 주관식으로만 된 답안을 채점하는 데만도 많은 재정이 소요돼 프랑스 내에선 고(高)비용-저(低)효율의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이런 가운데 최근 프랑스 교육부가 발표한 바칼로레아의 학교별 성적에서는 '공교육 천국 프랑스'란 말이 무색하게 사립학교들이 압승했다.
◆200세 된 바칼로레아=까다로운 4시간의 철학 시험을 시작으로 대략 1주일에 걸쳐 치르는 바칼로레아는 1808년 3월 17일 나폴레옹 칙령에 따라 만들어졌다. 프랑스에선 바칼로레아 시험을 통과해야 고교 졸업이 인정된다. 시험은 크게 일반·기술·직업 등 3개 분야. 대학 진학을 목표로 하는 수험생들은 일반 분야에 지원하며, 그 안에서 문과·사회경제·이과 계열별로 나눠 응시한다.
학생들의 선택권을 보장하느라 외국어 57개를 비롯해 선택 가능한 시험과목이 73개나 된다. 학생들은 철학·수학 등 필수 및 선택 9~12과목을 서술형 또는 논술로 치른다.
그러다 보니 매년 답안지 채점이 최대 고민이다. 채점관 14만명이 동원돼 400만장의 답안지를 평가한다. 시사주간지 렉스프레스에 따르면, 매년 바칼로레아를 치르는 데 드는 총 비용이 2억 유로(약 3000억원)에 달한다.
이런 엄청난 비용을 들이고도, 이 시험은 '낙방'이 아니라 '합격'시키려는 시험이다. 2007년 바칼로레아에선 62만1532명이 응시해 83.3%가 합격했다. 바칼로레아를 통과하면 그랑제콜을 제외한 일반 대학에는 어디든 자신이 사는 지역에서 진학 가능하다. 그러나 시험에 변별력이 없어, 대학 진학 첫해에 절반 이상이 탈락한다.
이에 장-로베르 피트(Jean-Robert Pitte) 전 파리 4대학 총장은 '박(bac·바칼로레아의 줄임말)의 사기극을 멈춰라'라는 책을 내고 바칼로레아 및 프랑스 입시제도의 문제점을 통렬하게 지적했다. 최근에는 똑같은 답안지를 놓고도 채점관에 따라 매기는 점수가 천차만별이라는 문제점도 제기됐다.
◆사립고교의 강세=프랑스 교육부는 지난 2일 2007년 바칼로레아의 학교별 성적을 공개했다. 일간지 르 피가로는 "사립고교가 공립고교를 크게 앞섰다"고 보도했다. 전국의 일반계 고등학교 중에 바칼로레아 합격률 100%를 기록한 곳은 62개. 이 중 사립이 56개였다.
'평등 교육'을 중시하며 공교육 체제가 근간을 이루는 프랑스에서도 유치원부터 고등학생까지 1200만명의 학생 중 약 17%(200만 명)는 사립학교에 다닌다. 사립학교 비율이 초등학교의 경우 13%에 불과하지만, 고등학교의 경우는 40%에 달한다.
시사주간지 렉스프레스 최근호는 바칼로레아 합격률과 학생 성적 향상도 등을 감안해 프랑스 전체 1871개 고교의 순위를 매겼다. 그 결과 프랑스 상위 20개 고교 중 공립은 단 2곳이었다. 잦은 파업으로 수업을 종종 빼먹는 공립학교보다 학생들을 더 철저히 공부시키고 관리하는 사립학교를 선호하는 프랑스 학부모들도 늘고 있다.
니콜라 사르코지(Sarkozy) 정부는 바칼로레아의 논란에도 불구하고, 이를 손질하는 개혁은 시도하지 않고 있다. 대신 학부모와 학생들의 선택권을 넓히고 더 경쟁력 있는 공립학교를 키우기 위해 학군제를 점차 폐지하는 개혁안을 추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