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기(41)는 '한국화된 팝 아트' 혹은 일본만화 아톰과 디즈니 만화 미키마우스를 뒤섞은 '한국식 하이브리드 캐릭터―아토마우스'로 이름난 경력 15년 차의 중견 작가다.

지난 15년간 한국 현대미술의 지형은 크게 변했고, 많은 작가들이 부침했다. 지속적으로 제 자리를 창출해내기가 쉽지 않은 현대미술계에서 이동기의 롱런은 사뭇 흥미롭다.

돌이켜 보건대 이동기가 맨 처음 팝 아트의 기본 문법에 한국의 시각 문화 요소들을 장착시켰을 때, 미술계의 반응은 그리 긍정적이지 않았다. "속 보이는 전략"이라는 단평이 첫 번째 이유였다. 그러나 점차 시간이 흘러 작품과 커리어가 쌓여가자, 평가는 달라졌다.

가까운 일본에서도 팝 아트를 현지화하는 데 성공한 작가는 무라카미 타카시(46) 이전엔 거의 없었다. 독일에서는 일찍이 지그마 폴케(67) 등이 '독일식 팝 아트'를 시도했지만, 결과는 절반의 성공이었다.

게다가 이동기의 정체는 '팝 아트' 그 자체가 아니라, '팝 아트처럼 보이는 작품'을 만드는 것이었다. '비주관적 작품의 형성과 소통에 관한 연구'라는 야릇한 제목의 석사논문처럼, 그는 팝 아트 작가들의 '작가 행세' 자체를 작업의 요체로 삼았다.

그런 작가가 활동 15주년을 맞아 '더블 비전'이라는 표제 아래 화면의 상단은 추상이고, 하단은 예의 유사 팝 아트로 구성된 연작을 발표했다. 게다가 추상은 누구나 게르하르트 리히터(76)라는 거장의 이름을 떠올릴 만큼 명백한 모작(模作)이다. 아톰과 미키마우스를 합성한 아토마우스와 리히터 풍의 추상을 짝지은 까닭은 무엇일까? 관객들은 작가의 엉뚱한 신작에 다소 당황하는 눈치다.

하지만 이동기가 리히터 식의 추상을 시도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02년 작인 '수표'에서 이미 그는 팝 아트적인 복제 회화의 배경에 까닭 없이 리히터 풍의 추상을 그려 넣은 바 있다. 따라서 작가의 내면에 잠복했던 추상에 대한 집착 혹은 로망이 비로소 연작으로 본격화됐다고 봐야 옳겠다.

흥미로운 점은 1962년 리히터가 후일 '사진 회화'로 명명된 연작을 시작한 배경에 팝 아트가 있다는 사실이다. 친구인 폴케의 영향으로 팝아트를 독일화하려고 노력하던 그는, 사진을 회화로 재현하는 과정에서 제3의 길을 찾았다. 이동기도 어떤 탈출구를 찾으려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