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타적인 사람은 자연선택 과정에서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었는가?"

이 질문은 학문의 종류에 따라 다양하게 대답될 수 있다. 그 중에서 게임이론은 '유유상종' 때문이라고 대답한다. 유유상종이란 유사한 성향을 가진 개체들이 서로 모이는 특성을 의미한다.

게임이론의 주장이 맞는다면 이타적인 사람은 이타적인 사람들끼리 모이려 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이들의 생존확률은 윈-윈(Win-Win) 전략에 의해 더 높아지리라는 것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반면 유유상종의 성향이 이기적인 사람들에게도 있다면 이들의 생존확률은 더 낮아지게 될 것이다. 이타적인 사람이 이기적인 사람을 만난다면 이타적인 사람의 생존확률은 당연히 떨어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이타적인 사람이 생존하기 위해서는 이타적인 사람을 만나야만 한다는 게임이론의 주장은 옳은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유유상종의 경향이 과연 이타적인 사람들 사이에서 존재하고 있는가"와 "만약 그렇다면 이 성향은 어느 정도의 확률 이상이 돼야만 하는가" 이다.

이 두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게임이론은 다음과 같은 논리를 폈다. 이타적인 사람과 이기적인 사람이라는 두 그룹이 있을 때, 이들이 다른 사람을 만날 가능한 경우의 수는 세 가지다. '이타적인 사람이 이타적인 사람을 만날 경우' '이타적인 사람이 이기적인 사람을 만날 경우' '이기적인 사람이 이기적 사람을 만날 경우'. 그리고 이 세 가지 경우는 다시 '유유상종으로 만났을 때'와 '무작위로 만났을 때'로 다시 구분할 수 있다.

이렇게 만들어진 6가지의 경우 각각의 확률을 구할 수 있다. 다시 이타적인 사람이 이타적인 사람을 만나는 경우에는 각각에게 1점씩을 주고, 이기적인 사람이 이타적인 사람을 만나게 되면 이기적인 사람에게는 2점을, 이타적 사람에게는 -1점을 준다. 그리고 이기적인 사람이 이기적인 사람을 만나게 되는 경우에는 각각 0점을 준다. 이 점수들을 앞의 6가지 경우에서 얻어진 각각의 확률에 곱하게 되면 이타적인 사람과 이기적인 사람이 각각 얻게 되는 평균 보수값을 구할 수 있다.

이제 이타적인 사람들이 이기적인 사람들보다 진화론적 안정성(생존 확률)이 높아질 수 있는 조건을 찾을 수 있다. 그것은 이타적인 사람들의 평균 보수값이 이기적 사람의 평균 보수값 보다 높아야만 한다는 것이다.

즉, '이타적인 사람들의 평균 보수값 〉 이기적인 사람들의 평균 보수값'이라는 부등식이 나오게 된다. 이 부등식을 풀게 되면 유유상종의 확률(s) 〉 1/2 이라는 결과가 얻어진다. 이는 결국 유유상종의 확률(s)이 1/2가 넘게 되면 이타적인 사람은 이기적인 인간보다 생존확률이 높아진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이제 "이타적인 사람들은 자연선택 과정에서 생존할 수 있는가?"라는 문제는 "이타적인 사람이 이타적인 사람을 만나려는 경향이 과연 50%가 넘을까?"라는 문제로 환원된다. 이에 대한 대답은 분명하다.

사회적 관계에서나 개인적 관계에서 우리는 이기적인 사람보다 이타적인 사람을 선호한다. 이런 특성은 아주 먼 옛날이라고 해서 달랐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어렵다. 자신의 이익만을 생각하는 이기적인 사람보다는 남을 배려하는 이타적 사람과 관계를 맺고 싶어하는 성향은 시대나 문화에 따라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사회 전체의 관점에서 보더라도 사회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이타적인 사람들이 구성원으로 꼭 필요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타적인 사람이 이타적인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려는 '유유상종의 확률'은 반드시 50%를 넘었을 것이다. 그 결과, 이타적인 사람들은 자연선택의 과정에서 도태되지 않고 진화할 수 있었다.

나정민 서울시립대 강사

이타성 또한 진화과정에서 인간에게 주어진 본성이라는 이런 연구결과는 조금만 생각해보면 당연하다는 결론이 나온다. 어떤 사회이건 그 사회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이타적 성향의 구성원이 있어야만 한다. 그리고 우리는 사회 없이는 생존할 수 없다.

이런 점에서 사회를 구성하며 살고 있는 우리 모두는 생존을 위해서라도 이기성 뿐 아니라 이타성도 필연적으로 가지고 있어야만 한다는 생물학적 사실에 직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