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부전선 최전방 휴전선 방어를 맡는 육군 모 사단의 한 직사화기 분대. 2주일 전 이 분대에 이모(20) 이병이 들어오면서 자칭 '안경 분대'가 완성됐다. 작년 10월 고참이 전역하고, 신 이병이 합류하자 분대원 6명 전원이 안경을 쓰게 됐기 때문이다. 분대장 김모(22) 병장은 "모두들 '이런 일도 있구나' 하며 깔깔 웃었다"며 "안경을 낀 불편한 사정을 서로 잘 알아 분대원들끼리도 이해가 쉽다"고 말했다.

이들처럼 '안경 쓴' 군인의 모습이 우리 군 병영의 낯익은 '풍속도'가 되고 있다. 안경을 쓴 학생들이 많은 고교 교실의 풍경이 그대로 군대로 옮겨온 것이다. 육·해·공군을 막론하고 '군복과 안경'은 더 이상 어색하지 않다. 국방부 관계자는 "작년 말 논산 육군훈련소 훈련병 7170명을 조사한 결과 거의 절반(3556명)이 안경을 쓴 것으로 집계됐다"고 말했다.

군도 이런 흐름에 맞춰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그 동안 안경을 '금기'처럼 여겼던 영역들이 차츰 문호를 열고 있다. 공군은 지난 2005년 조종사 지원자 시력 기준을 0.8에서 0.5로 낮췄다. 이렇게 되자 실제로 안경 쓴 지원자들이 몰려들어, 현재 공군사관학교 1학년 생도 146명 중 안경 쓴 생도는 65명에 달한다. 우리 공군 주력 KF-16 전투기를 몰고 있는 서재경(29·공사49기·19전투비행단) 대위는 "안경을 써도 전투기 조종에 전혀 문제가 없다"며 "특히 첨단 전투기들은 수십㎞ 떨어진 데서 미사일을 발사하는 식이어서, 시력에 의존하는 비중이 크게 줄었다"고 했다.

21일 중부전선 최전방 부대에 근무하는 한 병사가 여자 친구로부터 받은 편지를 읽으려 하자 동료 병사들이 한꺼번에 몰려들었다. 8명 중 6명이 안경을 쓰고 있다.

공군 관계자들 중에도 안경 쓴 조종사들이 '생소하다'고 말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하지만 이미 조종사의 20% 정도가 안경을 쓰고 있다. 이들은 조종사가 된 후 시력이 나빠진 경우가 대부분이다. 공군 한 소령은 "외국의 시력기준도 우리와 비슷한 경우가 많아 미국은 0.4, 영국독일은 0.5"라고 말했다.

'귀신 잡는 해병'조차 예외는 아니다. 지난 7일 입영한 해병 훈련병 558명 중 240명이 안경을 썼다. 10명 중 4.3명꼴이다. 해병대 관계자는 "수색대만 '안경 벗고 시력 0.8 이상'이란 조건을 내걸었을 뿐, 그 외엔 안경 쓰고 시력이 1.0만 넘으면 누구나 해병이 될 수 있다"며 "훈련은 안경을 썼든 안 썼든 똑같이 하고 있다"고 말했다.

안경 쓴 군인이 최상의 전투력을 발휘할 수 있느냐에 대해선 다소 의견이 엇갈린다.

중부전선 최전방 6사단에 근무하는 이정섭(22) 상병은 '안경 쓴 명사수'다. 작년 10월 사단이 개최한 '청성용사' 선발 대회에서 각 부대가 추천한 경쟁자 160여 명을 물리치고 당당히 1등을 차지했다. 40㎞ 떨어진 목표 지점을 지도·나침반만 갖고 8시간 안에 도착하는 '산악행군', 각개전투, 화생방 등 모든 과제를 우수한 성적으로 통과했다. 특히 주·야간 사격에서 유일하게 40발을 모두 명중시켰다. 이 상병은 "고2 때부터 쓴 안경은 신체의 일부"라며 "훈련과 임무 수행에 전혀 문제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비·눈이 쏟아지는 악천후나 바다에서 작전을 벌일 때에는 안경이 장애가 될 수밖에 없지 않으냐는 의견도 나온다. 이 때문에 강한 군기나 훈련이 요구되는 일부 부대에선 안경 쓴 군인은 '사절'해야 한다는 말도 나온다. 해병대 관계자는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에 일년에 몇 건씩 '안경 쓴 해병을 뽑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이 올라온다"고 말했다.

물론 지금도 '좋은 시력'을 요구하는 곳이 있다. 육군 특전사의 경우 시력이 좌우 0.7 이상이 되어야 한다. 해군의 수중폭파대(UDT)·해난구조대(SEAL)에도 눈 나쁜 사람은 지원이 어렵다.

군도 안경 쓴 장병들의 증가 추세에 맞춰 전투력이 떨어지지 않도록 하는데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국방부는 이르면 내년 초부터 보급을 목표로 '전투용 안경'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 안경은 특히 방독면을 쓸 때 아주 유용하다. 지금은 화생방 상황 때, 쓰던 안경을 벗고 작은 렌즈가 붙어 있는 방독면을 써야 한다. 하지만 이 렌즈는 크기가 작고 눈동자 간격이 고려되지 않아 사격할 때 불편하다. 국방부 관계자는 "새 전투용 안경은 그 위에 그대로 방독면을 쓰도록 만들고 있다"며 "훈련소 입소 때 개인 시력을 측정해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맞는 맞춤형 안경을 지급할 계획"이라고 했다. 국방부는 또 미국 등 외국과 같이 '시력교정' 수술을 한 사람도 전투기 조종사가 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