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정민 서울시립대 강사

제1부와 제2부에서 우리는 이기성과 상호 협력이 전제된 이타성은 자신의 생물학적 적응도를 높여주는 행위이기 때문에 진화 과정에서 매우 안정적인 전략이라는 점을 살펴봤다. 반대로 이러한 보상이 전제되지 않는 '진정한 이타적 행위'는 진화론적으로 안정적이지 못한 전략이다. 이 성질은 진화 과정 속에서 살아남아 후세에 전달되기 어렵다. 만약 그렇다면 인간 사회에서 종종 나타나는 진정한 이타적 행동은 진화과정을 통해 일반적으로 나타나게 된 인간의 성질이라기보다는 '돌연변이적인 특성'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인간은 본성적으로는 이타적이지 못하다는 뜻이다. 그런데 심리학이나 철학, 경제학 등에서는 이타성이 인간의 본질적인 특성일 수도 있다는 연구가 끊임없이 행해지고 있다.

그 중 하나가 '게임이론'의 '공공재 실험'이다. 이 실험은 다음과 같이 진행된다. 피실험자 A와 B 두 명이 한 조가 되고, 실험자는 A에게 3만원을 준다. 이유는 없다. 그냥 준다. A는 실험자에게서 받은 돈을 B에게 한 푼도 안 줄 수도 있고, 일부를 줄 수도 있으며 3만원 모두를 줄 수도 있다. 그리고 B는 A가 준 돈을 거절할 수 있다. 만약 B가 A가 제안한 돈을 거절한다면, A와 B 모두는 돈을 받지 못한다. 반대로 B가 A로부터 제안 받은 돈을 승낙한다면 A도 B도 자신의 몫을 가져갈 수 있다. 이 실험은 몇 년 동안 여러 나라에서 다양한 피실험자들을 대상으로 행해졌다. 실험의 결과는 대부분 비슷했다. 돈의 액수나 국적, 피실험자들의 사회적 지위와는 상관없이 거의 대다수의 A는 자신이 받은 돈의 30~50%를 제안했고, B는 A가 30% 미만의 돈을 제안했을 때 거절했다.

이 실험의 결과는 '대다수의 인간들은 이기적으로 행동한다'는 주장에 대한 반론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 이유는 만약 대다수의 인간들이 이기적으로 행동한다면 설사 A가 아무리 적은 돈을 제안하더라도 B는 무조건 받아들여야만 한다. B의 입장에서 보면, 비록 적은 액수라고 하여도 공짜이기 때문에 어쨌든 받는 것이 자신에게 이득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A가 30% 이하의 돈을 제안하면 대부분의 B는 거절했다. 이런 행동은 이기적이지 못한 행동이다. 그래서 실험자는 그 이유를 물어보았다. B는 "그 돈은 공짜로 얻어진 돈이기 때문에 A는 공정하게 나누어야 한다. 그런데 만약 A가 공정하게 배분하지 않는다면 설사 내가 손해를 보더라도 A를 응징하는 것이 옳은 일이라고 생각한다"라고 대답했다. 즉, B는 자신의 손해를 감수하고서라도 불공정한 A를 응징하려는 '공정성'을 가지고 있다고 해석될 수 있다. 그렇다면 A의 심리상태는 어떠할까? A의 입장에서는 B에게 적은 돈을 제안하게 되면 B가 거절을 할 확률이 높을 것이고, 그렇게 되면 자신도 돈을 받지 못할 확률이 높아질 터이니 적정한 수준인 30~50%를 제안했을 가능성이 있다. 그래서 이번에는 약간 변형된 실험을 해보았다.

이번에는 설사 B가 돈을 거절하더라도 A는 자신의 몫을 받을 수 있다. 그러니 A는 B의 거절이 두려워 많은 돈을 제안할 필요가 없다. 물론 B에게 전혀 돈을 주지 않아도 된다. 이 실험의 결과는 실험자들의 예상과 빗나갔다. 60%가 넘는 A가 여전히 30~50%의 돈을 제안했으며 B는 여전히 30% 이하의 제안에 대해서는 거절했다. 그래서 A의 심리상태를 물어봤다. 대부분의 A는 "설사 내가 항상 돈을 받을 수 있다고 해도 공짜로 주어진 돈은 공정하게 나누는 것이 옳기 때문에 적정한 수준의 돈을 B에게 줬다"라고 답했다.

물론 이 실험은 지엽적이고 한정적이기 때문에 "인간들은 항상 자신의 이득이 최대가 되는 이기적인 행동만을 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결론을 내리기에는 성급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런 과학적 탐구와는 별개로 우리들은 우리가 항상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서 행동하지만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드물기는 하지만 자신의 이익과는 무관하게 타인을 배려하고 좀 더 공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작은 희생을 기꺼이 감수한다. 그렇다면 이런 성향은 교육에 의해 습득된 것일까, 아니면 선천적으로 얻어진 것일까? 이 질문에 대해 과학은 아직까지는 확실한 답을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근래 들어 많은 실험들이 '타인을 고려하는 특징인 이타성은 타고난 것'이라는 사실들을 보여주고 있다. 예를 들어 한 살이 채 안 된 어린아이 앞에서 실험자가 도움이 필요한 상황을 연출하면 그 아이는 실험자를 도와주려는 행동을 보인다는 과학적 연구가 2007년에 사이언스지에 실린 적이 있다. 또 다른 연구에서는 옳은 일을 하는 장난감과 그렇지 않은 장난감 중에 아이들은 본능적으로 옳은 일을 하는 장난감을 선호하는 경향을 보인다고 한다.

그런데 문제는 아직도 남았다. 설사 이타성이 본성적으로 우리에게 주어진 성질이라면, 이 이타적 특성은 진화과정에서 지금까지 살아남았어야만 했다. 그런데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이타적인 개체는 생물학적 적응도가 낮기 때문에 생존할 확률이 낮다. 그렇다면 이 이타적인 개체들은 어떻게 자연선택의 과정에서 도태되지 않고 살아남아 이타적 성질을 자신의 후손인 우리들에게 유전시킬 수 있었을까? 이 질문의 답을 다음 편에서 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