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뷰리풀’(beautiful)한 날씨죠?” “오우 마이 갓(Oh my god), 어째 그런 일이….”

미용사 순애씨가 말 끝마다 영어를 섞어 쓰게 된 건 오래 전 일이 아니다. 한때 10명 가까운 직원을 거느리고 명동 한복판에서 미용실을 운영할 때만 해도 영어로 할 줄 아는 말이라고는 “생큐”밖에 없었다. “미들 스쿨(middle school) 종친 뒤로 영어 단어 들어가는 책은 한 번도 펼쳐본 적 없걸랑요.”

‘드뤼임(dream)’이 생겼기 때문이다. 2년 전 빚 보증을 잘못 서 강북 변두리로 쫓겨온 첫날. 파리 날리는 영업장에서 남편과 소주잔을 주고받다 뇌리에 스쳤던 말이 ‘이민’이었다. 기술만 확실하면 교수나 의사 같은 엘리트들보다 남의 땅에 더 확실하게 발 붙이고 살 수 있다는 누군가의 말이 떠올랐던 것이다.

문제는 영어! 30년 가위질 경력에 기술은 떼어 놓은 당상이건만, 영어 시험을 통과해야 하는 것이 가방끈 짧은 순애씨 부부의 최대 난관이었다. 로커처럼 긴 머리를 휘날리며 오토바이를 즐겨 타던 반백수 남편이, 빗자루를 손에 쥐고 미용실 바닥에 수북이 쌓인 머리칼을 치우는가 하면 손님들 머리를 감기겠노라 팔 걷고 나선 것도 이때부터다.

순애씨도 바빠졌다. “나보다 머리 좋은 네가 해봐”라는 남편 한마디에 미용실로 강사를 불렀고, 밤 9시 영업이 끝나면 11시까지 영어와 씨름했다. 순탄치만은 않았다. 어휘는 고사하고 문법이 전혀 돼 있지 않으니 강사들이 일주일도 안 돼 두 손을 들었다. “안 되겠다 싶어 문법 책을 낱장으로 찢어 통째로 달달 외웠어요.” 그러기를 1년 하고도 4개월. 지난해 가을 처음으로 이민 시험을 치렀다. “낙방이죠. 하하. 제가 원래 배짱이 좋아 스피킹은 잘 되는데 리스닝이 안 되걸랑요. 꿀 먹은 벙어리처럼 서 있느니 에라 모르겠다 하고 평소 외웠던 문장을 줄줄 읊었는데 안 속데요.”

그렇다고 포기하랴. 리스닝을 위해선 원어민과의 소통이 필요하단 생각에 그 길로 영어학원 새벽 6시 강의에 등록했다. 그 덕에 순애씨의 영어실력은 일취월장 중. “비법요? 아시잖아요. 에브리데이(everyday) 해야 한다는 것. 제일 중요한 건 영어를 죽도록 해야 하는 자기만의 목표가 있어야 해요.”

그런데 영어를 공부하는 바람에 얻은 진짜 수확은 따로 있었다. 미용실에 종일 붙어사는 엄마 아빠 탓에 마사지실을 개조한 작은 방 안에서 혼자 놀고 혼자 공부하는 초등 1학년 아들 녀석이 엄마 어깨 너머로 영어를 터득하기 시작한 것. “이민이라는 꿈 영영 이뤄지지 않을지도 모르죠. 하지만 꿈이 있으니 날마다 떠오르는 태양도 달리 보여요.”

클레오파트라식 머리에, 작은 키를 커버하기 위해 신는 10㎝ 통굽. 작은 농담에도 뻐드렁니가 다 드러나도록 웃는 마흔 살 순애씨는 예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