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태인 학살을 다룬 영화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공포의 대명사 아우슈비츠로 끌려가는 유태인의 발걸음이 매우 얌전하다는 것이다. 죽음에 이르는 마지막 길에서 한번쯤 커다란 저항이 일어날 법도 하건만, 그건 관객의 희망사항일 뿐이다. 물론 영화가 의도하는 이미지일수도 있다. 하지만 실제로 아우슈비츠로 가는 도중에 소요사태가 일어났다는 기록은 찾아보기 힘들다. 그들은 왜 죽음 속으로 질서정연하게 걸어 들어간 것일까.
의문은 한 가지 더 있다. 아우슈비츠로 가는 기차 안에는, 유태인들이 지니고 온 갖가지 물건들이 선반에 가득하다. 귀중품을 담은 가방은 기본이다. 간단한 노동도구와 더불어 의사 옆에는 의료기구가, 음악가 옆에는 바이올린이 눈에 띈다. 학살현장으로 떠나는 유태인들은 왜 그 물건들을 애지중지하며 소지하고 있었던 것일까.
모든 것은 정교하게 연출한 거짓말 때문이었다. 기차에 오르기 전에 독일군은 ‘노동력이 필요한 곳으로 집단 이주할 것’이라고 속이며 유태인을 모았다. 그리스 계 일부 유태인에게는 우크라이나에서 상점을 열게 해준다는 계약서까지 써주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독일군은 소지품 크기와 개수를 제한했다. 유태인들은 당연히 귀중하고 값나가는 물건부터 가방에 챙겼다. 가방 주인이 가스실로 사라지면 독일군 금고 속으로 들어갈 물건들이었다.
화물기차 안에서 독일군은 유태인 수를 세어본 척 한 다음에 경고한다. 만약 한 명이라도 보이지 않으면 각 호차별로 한 사람씩 총살하겠다고. 하지만 독일군은 승차인원을 실제로 세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그 거짓말 덕에, 콩나물시루처럼 북적거리는 기차 안에서 유태인은 서로를 감시하면서 고스란히 죽음의 수용소에 이르게 된다.
유태인 90만 명을 학살했다는 트레블링카 수용소. 독일군은 그 악명 높은 인간 도살장을, 노동수용소로 가기 위한 임시역사로 위장하였다. 역사 플랫폼에는 다른 방향으로 가는 지시판과 기차 시간표 따위가 붙어 있었다. 물론 모두 가짜였다. 그리고 독일군은, 다음 기차를 타기 전에 위생을 위해 반드시 목욕을 해야 한다며 신분증과 귀중품은 수령증을 받고 잠시 맡기라고 했다. 모두가 새빨간 거짓말이었다.
운동장에는 꽃이 만발하고, 확성기에서는 고상한 음악이 흘러나오는 아우슈비츠. 1백만 명 이상이 학살당한 그 수용소에서도 독일의 살인광들은 가스실에 ‘샤워실’이라는 간판을 달았고, ‘옷 벗은 위치를 표시해둬야 나중에 옷이 바뀌지 않는다’는 안내문을 붙여놓았다. 그리고 비누 한 조각씩을 나누어주며 마지막 거짓말을 한다. ‘여러분의 위생을 위해 목욕부터 할 것’이라고. 그 거짓말에 따라 유태인들은 가짜 샤워기가 붙어 있는 가스실 쪽으로 걸어갔다.
250명 가량을 수용하는 목욕탕이 꽉 차면 문을 잠그고, 가스를 분출했다. 그로부터 20분 남짓 지나면 유태인은 모두 시체로 변했다. 그 시체들은 곧 소각장이나 매립지로 옮겨 처리했다. 이 모든 과정이 일사천리로 이뤄졌다. 이렇게 24시간을 가동하면 하루 최대 9천명을 흔적도 없이 처리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처럼 대규모 ‘도살 공장’을 운영하는데 필요한 독일군 인력은 극히 소수였다. 아우슈비츠의 경우 151명, 트레블링카 수용소는 고작 40명으로 운영됐다. 나머지 경비는 우크라이나 경비대를 활용했고, 시체 처리반은 유태인 수용자를 뽑아 구성했던 것이다.
이처럼 극소수가 다수를 학살할 수 있었던 것은, 지배하는 소수가 거짓말에 능숙했기 때문이었다. 학살의 주범 히틀러는 자신의 저서 ‘나의 투쟁’에서 “거짓말 규모가 거짓말을 믿게 하는 결정적인 요인”이라고 말한다. 그 말을 실천하듯, 히틀러는 2차 세계대전 직전인 1938년, 영국의 챔버레인 총리에게 거짓말을 했다. 체코슬로바키아가 국경을 새로 정하는 것에 대해 협상한다면 전쟁은 피할 수 있을 것이라고. 그리하여 영국의회는 방심했지만, 히틀러는 곧 전쟁을 일으켜 수백만 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군중은 극적인 거짓말을 쉽게 믿는다는 것이 히틀러의 믿음이었다. 원초적인 단순성으로 인해, 군중은 큰 거짓말일수록 잘 걸려든다는 것이다. 이 전쟁광은 또, 승리자는 진실을 말했는지 여부에 대해 질문을 받지 않는다고 했다. 당시 그는 자신이 역사 속에서 영원한 승자로 남을 줄 알았던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