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이건 기자] 허정무(52) 감독에게 차범근(54) 감독은 라이벌이자 벽이었다. 둘의 축구 인생을 살펴보면 항상 차범근이 한 발 앞서 있었다. 국가대표팀 발탁도 차범근이 허정무보다 2년 앞선 1972년이었다.
차범근이 76년 박정희대통령컵 개막전 말레이시아전에서 7분을 남기고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극적인 무승부를 이끄는 등 맹활약하는 동안 허정무는 그의 그늘에 가려있었다. 그는 차범근이 분데스리가 진출로 대표팀 발탁이 어려워지자 대표팀의 에이스로 부상할 수 있었다.
유럽 클럽 진출도 허정무가 한 발 늦었다. 차범근은 1978년 다름슈타트에 입단했고(이후 차범근은 군 복무 문제로 인해 11일 만에 돌아왔다가 이듬해인 79년 프랑크푸르트로 독일에 재진출했다) 허정무는 이보다 1년 늦은 1980년 네덜란드 에레데비지에의 PSV 아인트호벤으로 진출했다. 박지성, 이영표의 아인트호벤 대선배인 셈이다.
유럽 진출이 한 발 늦었던 만큼 허정무의 활약은 차범근에 비해 좋지 않았다. 차범근은 89년까지 분데스리가서 308경기를 뛰며 98골을 넣었다. 이는 후에 브라질 출신의 지오바니 에우베르가 133골을 넣기 전까지 외국인 선수 최다 득점이었다. 반면 허정무는 77경기에 나서 15골을 뽑아냈다. 다양한 포지션을 소화하는 멀티플레이어인 그를 공격수인 차범근과 동일선상에서 비교할 수 없지만 부상으로 3년 만에 국내로 복귀한 것은 아쉬울 수 밖에 없다. 마침 국내에 프로리그가 생겨난 시기이기도 했다.
선수 시절 허정무가 차범근보다 앞섰던 것은 월드컵에서 활약이 유일하다. 85년 잠실주경기장에서 열린 멕시코 월드컵 최종 예선에서 허정무는 후반 16분 천금같은 결승골을 넣으며 32년 만에 월드컵 진출을 이끌었다. 차범근과 함께 나선 멕시코 월드컵 본선에서 허정무는 시대의 영웅 디에고 마라도나를 잘 마크했으며 이탈리아전에서는 후반 44분 골을 성공시키기도 했다. 차범근이 기록하지 못한 월드컵 본선 골을 터뜨린 것이다.
선수 생활을 접고 지도자로 변신한 두 영웅은 다시 서로 치열한 경쟁을 펼쳤다. 이번에도 차범근이 먼저 지휘봉을 잡았다. 차범근은 1991년 현대의 지휘봉을 잡았고 허정무는 1993년 포항을 맡았다. 감독으로서 우승은 허정무가 빨랐다. 허정무는 1993년 컵대회 우승을 맛본 것. 또한 우승 횟수에서도 97년 포항의 FA컵 우승, 2006년과 2007년 전남 감독으로 FA컵 2연패를 맛보는 등 총 4회 우승의 경험이 있다. 하지만 차범근은 2004년 수원을 우승으로 이끌며 단 한 차례 정상을 경험했다.
차범근은 이뤘으나 허정무가 못이룬 일이 대표팀 감독으로 월드컵 본선에 출전하는 것이다. 차범근은 비록 중도 경질당하기는 했지만 98 프랑스 월드컵 본선에 나섰으나 허정무는 아직 기회를 잡지 못했다. 따라서 허정무에게 이번 월드컵 예선전은 남다르다. 소속팀이던 전남이 내년 AFC 챔피언스리그 진출 자격을 확보했음에도 허정무는 대표팀 감독 자리를 택했다. 감독으로서 월드컵 본선에 나서고 싶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해석된다.
과연 라이벌 차범근에 비해 반 발짝 뒤처져 있던 허정무가 과연 월드컵 본선 진출을 통해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을지 기대된다.
bbadagun@osen.co.kr
[Copyright ⓒ 한국 최고의 스포츠 엔터테인먼트 전문 미디어 OSEN(www.ose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