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현지시각) 미국 연방통신위원회(FCC)가 신문·방송 겸영금지(cross-ownership rule) 완화를 전격적으로 제안한 이유는 최근 10년간 미디어 환경이 급변했기 때문이다. 겸영금지 법안이 도입된 이듬해인 1975년 케이블 방송을 시청하는 가구는 15%에 불과했다. 위성방송은 아예 존재하지도 않았다. 현재 미국에서 케이블방송이나 위성방송을 보는 가구는 85%에 이른다. 전체 미국인 3명 중 1명은 인터넷을 통해 정기적으로 뉴스를 접하고 있다.

케빈 마틴 FCC 회장은 13일자 뉴욕타임스 기고문에서 “교차소유 금지조항은 결국 지역 언론시장에서 뉴스의 질을 떨어뜨리게 된다”며 “지난 10년간 FCC 회장은 민주당 출신이냐 공화당 출신이냐를 막론하고 이 조항의 수정이 필요하다고 말해 왔다”고 말했다.

미국의 복합 미디어업체 트리뷴컴퍼니의 주력 매체 중 하나인 시카고트리뷴 본사. 트리뷴컴퍼니는 11개 일간신문과 24개 지상파 TV 방송사를 소유하고 있으며 신문·방송 겸영 대폭 확대를 주장하고 있다.

◆32년 묵은 신문·방송 겸영 금지 조항 완화키로

마틴 회장은 “최근 18개월 동안 여섯 번의 공청회를 열었고, 열 차례에 걸친 경제성 연구를 거쳤으며 수만 건의 의견을 들었다”며 “우리의 결론은 (소유규제 완화를 위해)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었다”고 밝혔다.

이번 FCC의 교차소유 확대 방안은 몇 가지 제한을 두고 있다. 우선 새로운 조항은 뉴욕·워싱턴DC 등 미국 미디어 시장의 상위 20개 지역에만 적용된다. 신문사를 경영하는 회사는 한 도시에서 TV나 라디오를 동시에 소유할 수는 없고, 둘 중 한 매체만 겸영할 수 있다. 또한 한 신문사가 TV방송국을 매입할 때는 합병 이후에도 그 시장에 최소한 8개의 독립적인 다른 신문사나 방송국이 있어야 한다. 또한 한 도시에서 시청률 4위 이내의 방송국은 신문사의 합병 대상에서 제외된다.

마틴 회장은 “미디어 교차소유 안건은 다음달 18일 FCC에서 표결에 부쳐질 것으로 기대한다”며 “공화당 추천인사뿐 아니라 민주당 추천을 받은 위원 중 한 명도 찬성표를 던질 수 있다”고 밝혔다. FCC는 현재 공화당 인사 3명, 민주당 인사 2명으로 구성돼 있다.

미디어 업계는 신문·방송 겸영을 완화하는 방안을 환영하면서도 대상지역을 미국 전체로 확대해야 한다고 요청했다. 미국신문협회(NAA) 존 스텀(Sturm) 회장은 “우리는 지난 10년간 시대에 맞지 않는 교차소유 금지조항의 완전한 철폐를 요구하고 있다”면서 “로컬 뉴스를 활성화하는 것은 상위 20개 시장에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LA타임스와 시카고트리뷴 등 11개 일간신문과 24개 지역방송국을 소유하고 있는 트리뷴컴퍼니도 “우리는 마틴 회장이 제안한 수준 이상을 추구할 것”이라는 메모를 직원들에게 돌렸다.

노동단체나 인권단체 등은 “거대 미디어가 여론을 독점하면 안 된다”며 “교차소유 금지규정을 현행대로 유지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우리나라도 대선 이후 미디어 빅뱅 예고

한국 미디어 시장은 미국보다 더 빠르게 변하고 있으나, 유독 신문사는 각종 규제법규에 의해 팔다리가 꽁꽁 묶인 상태이다. 한국언론재단은 14일 발간한 보고서에서 미디어 기업이 사업을 다각화하는 데 가장 큰 장애요인으로 정부 규제와 자본력 부족을 꼽았다.

현행 방송법은 신문사가 지상파 방송국은 물론이고, 케이블 뉴스채널조차 운영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러한 시스템은 1980년 신군부가 등장하면서 만들어져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노무현 정부는 이에 더해 많은 독자들을 가진 비판언론을 규제하기 위해 주요 신문의 시장점유율을 제한하는 신문법까지 만들었다.

최근 주요 정당의 대선 후보들은 조선일보와의 지상 인터뷰에서 신문·방송 겸영 문제에 대해 전향적인 입장을 보여 대선 이후 미디어 업계에 큰 변화가 예상된다.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는 “선진국과 마찬가지로 매체 간 교차소유는 기본적으로 허용해야 한다고 본다”고 밝혔다. 대통합민주신당 정동영 후보도 “방송과 신문의 겸영, 미디어 간 교차 소유, 이를 통한 복합미디어 그룹의 등장 등은 반드시 검토돼야 할 정책적 사안”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정 후보는 “미디어 환경에 대한 판단 등이 우선돼야 하며 사회적 공론화 과정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시간이 필요하다”고 전제를 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