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대전시 중구 선화동 ‘성호사’. 사무실 문을 열자, 책상에 앉아 작업에 몰두하고 있는 성호사 유철규(54) 대표의 모습이 들어왔다. 인기척도 눈치채지 못한 채 묵직한 낙관을 파는 모습이 사뭇 진지했다.

37년간 인장(印章) 공예에 전념하며 외길인생을 걸어온 유씨는 국내에 4명 밖에 없는 인장 명장(名匠) 중 한명. 2003년 명장으로 선정됐으며 국가인장공예기능사 심사위원, 국새서체심사위원, 명장선정심사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정·관계, 법조계, 단체장 등 각계 인사들의 ‘도장’을 제작하는 것은 물론 국새(國璽)가 완성될 때까지 감리하는 임무도 맡고 있다.

유명세 탓에 전국 각지에서 제작 주문이 줄을 잇지만 무조건 다 만들지는 않는다. 그가 서두르지 않고 수작업을 고집하는 이유는 완성도 높은 작품을 내놓기 위해서이다.

“공들여 만든 작품을 알아줄 때 큰 보람을 느끼죠. 적게 만들더라도 제대로 된 작품을 내놓겠다는 원칙은 철저히 지킬 생각입니다.”

37년간 인장공예에 매진해 온 유철규씨가 전각(篆刻)도장을 새기고 있다.

유씨가 도장과 인연을 맺은 것은 17세 때인 1970년부터이다. 충남 천안시 병천면에서 태어나 어려운 가정형편에 중학교를 마친 뒤 대전의 한 도장집에 취직하면서 시작된 도장과의 인연이 어느덧 30년을 훌쩍 넘겼다.

그가 오늘의 위치에 오르기까지는 끊임없는 노력과 땀방울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처음 3년 동안 낮에는 조각칼을 갈거나 배달 심부름을 했고, 밤에는 서예와 한학공부에 정진해야 했다. 인장에 새기는 글씨체를 익히는데 꼬박 7년이 걸렸다. 고급 인장을 새기는 것은 스승에게 인정받고 나서야 비로소 시작할 수 있었다.

“한자 한자에 혼을 담으라”는 스승의 뜻을 가슴 깊이 새겨온 유씨는 1980년 대흥동에 업소를 차리고 17년간 운영해오다 지금의 선화동에 자리잡았다.

자신만의 독특한 서체 개발에 힘써온 유씨는 상형문자인 ‘갑골문자’를 연구하고 있다. 삼국시대부터 왕이나 왕비 등이 사용했던 도장을 재현하고 반야심경 등을 나무뿌리나 돌에 새기는 작업도 벌이고 있다.

대전·충남 인장협회사무실에서 주 3회 2시간씩 인장기술 강의를 통해 후진 양성에 힘써온 유씨는 일본, 중국의 인장예술인과 교류하며 2년에 한차례씩 국제 전시에도 참여하고 있다.

“대를 이을 젊은 제자들이 없다는 게 문제죠.”

유씨는 “700명에 달했던 지역 인장협회 회원수가 50여명으로 줄었고, 대부분 50대 이상이라 명맥만 유지하는 실정”이라며 아쉬워했다. 하지만 언젠가 후배들에게 물려주기 위해 자신이 작업한 서체를 차곡차곡 모아두고 있다.

‘심혈을 기울여 도장을 새길 때가 가장 행복합니다.”

유씨는 “천년 이상 이어온 인장공예를 더욱 발전시키는 데 여생을 바치겠다”고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