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나 일본에 여행을 가서 갑자기 급한 볼일이 생겼을 때, ‘休紙(휴지)’를 찾는다면 어떻게 될까? 웬만해선 못 얻을 것이다. 일본에선 ‘塵紙(치리가미)’나 ‘토이레토 페파’, 중국에선 ‘衛生紙(웨이성즈)’라고 하기 때문이다.

한자문화권에 속하는 한·중·일 3국이지만 같은 글자로 된 단어라도 뜻이 제각기 달라지거나 아예 없는 경우가 아주 많다. 한국과 일본의 두 학자가 이를 분석한 사전을 처음으로 내놓는다. 동양사상 전공자인 사토 고에쓰(佐藤貢悅) 일본 쓰쿠바(筑波)대학 교수와 엄석인(嚴錫仁) 야시마가쿠엔(八洲學園)대학 교수는 이런 단어 280여 개를 모아 해설한 ‘일중한(日中韓) 한자 통용 소사전’을 2년에 걸쳐 집필, 내달 일본 유잔가쿠(雄山閣) 출판사를 통해 출간할 예정이다.

▲ 사토 고에쓰(왼쪽) 교수와 엄석인 교수가 제8회 국제한자회의에서 발표한‘일중한 한자통용 소사전’에 관한 논문을 들어 보이고 있다.

지난주 열린 제8회 국제한자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중국 베이징(北京)을 찾은 두 사람은 “글자가 같다는 것 때문에 여행하다 자칫 오해하거나 실수할 일이 많다”고 말했다. 사토 교수는 30여 년 전 처음 중국에 갔을 때를 회상했다. “식당에서 물[水]을 달라고 했어요. 일본에서 ‘水(미즈)’라고 하면 당연히 찬물을 갖다 줍니다. 그런데 뜨거운 물을 갖다 주는 거예요.” 알고 보니 중국의 ‘水(수이)’는 찬물과 뜨거운 물을 포괄하는 개념이었고, 이건 한국도 마찬가지였다.

사전은 이런 차이를 자세히 설명했다. ‘愛人(애인)’이란 말은 우리나라에서 ‘연인(戀人)’의 의미로 쓰인다. 하지만 일본에서 ‘愛人(아이진)’이라 하면 주로 ‘내연관계에 있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중국에서 ‘愛人(아이런)’이라고 하면 ‘배우자’를 말한다.

‘石頭(석두)’는 중국에선 그냥 ‘돌’이지만 한국에선 ‘머리가 나쁜 사람’, 일본에선 ‘완고한 사람’이란 뜻이 된다. ‘汽車(기차)’는 한국과 일본에선 ‘기차’를 말하지만 중국에선 ‘자동차’다. ‘親分(친분)’을 ‘오야붕’이라고 읽는 일본에선 ‘집단의 우두머리’란 뜻으로 쓴다. 두 사람은 “이 어휘들을 들여다 보면 서로 조금씩 다른 세 나라의 문화와 풍습이 드러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