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그룹 전략기획실(옛 구조조정본부) 법무팀장을 지낸 김용철(金勇澈·49) 변호사의 ‘삼성 비리 의혹’에 대한 잇따른 폭로의 수위가 점차 높아지고 있다. ‘비자금 조성 의혹’에 이어 ‘삼성 떡값 검사 40여 명’, ‘에버랜드 사건 증인 조작’, ‘이건희 회장의 로비 지시 문건’ 등 김 변호사와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이 주장하거나 공개한 내용 하나 하나가 사실로 드러날 경우 메가톤급 폭발력을 지닌 사안들이다.
검찰은 5일로 예정된 사제단의 2차 기자회견을 지켜보고 수사 착수 여부를 판단하겠다는 조심스러운 기류다. 하지만 물증이 드러날 경우 검찰 수사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게 검찰 안팎의 시각이다.
◆삼성 비자금 핵폭풍 몰고 오나
김 변호사와 사제단이 폭로한 내용의 핵심은 ‘삼성의 비자금’이다. 삼성이 1조원 규모의 비자금을 조성, 2002년 대선자금도 제공하고 정치인과 판·검사 등 사회지도층 인사에게 떡값 제공 등의 로비를 해왔다는 것이다.
김 변호사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2002년 삼성의 불법대선자금이 이건희 회장의 개인 돈이 아니라 회사의 비자금”이라고 주장했다. 향후 김 변호사가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추가적 물증이나 정황 증거를 제시할 경우 대선자금에 대한 검찰 수사가 재개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삼성의 불법대선 자금의 출처(조성 경위)가 비자금이었는지 여부와 함께 삼성이 노무현 캠프에 제공한 ‘+α(알파)’ 자금이 있는지가 쟁점으로 부상할 수 있다. 한나라당측에는 2002년 11월 모두 324억7000만원을 건넸지만, 노무현 캠프측에 건넨 돈은 36억원(채권 21억원·현금 15억원)이 고작이었기 때문이다.
사제단은 ‘비자금을 통한 삼성의 사회지도층 인사 관리’ 증거의 하나로 지난 3일 언론을 통해 ‘이 회장의 로비 지시 문건’을 공개했다. 공개된 ‘회장 지시사항’에는 “변호사·검사·판사·국회의원 등 현금을 주기 곤란한 사람과 돈 안 받는 사람(추미애 의원 등)에게 호텔 할인권을 발행해 주면 효과가 있을 것”이란 취지의 내용이 담겨 있다. 이에 대해 삼성측은 “경영 관련 이 회장의 발언 중 일부를 확대해 이 회장이 로비를 직접 지시한 것처럼 주장하는 것은 왜곡”이라고 말했다.
◆에버랜드 사건 증인조작 주장 진위 공방
김 변호사는 또 삼성이 민감하게 생각하는 에버랜드 사건의 증인을 직접 조작했다는 주장도 제기했다. 에버랜드 사건이란 에버랜드측이 1996년 전환사채(CB)를 이건희 삼성 회장 자녀들에게 저가에 배정, 삼성 지주회사인 에버랜드의 경영권을 넘겼다가 2000년에 고발된 사건이다. 검찰은 핵심 실무자인 에버랜드 전·현직 사장 허태학·박노빈씨를 2003년에 먼저 기소했다. 편법증여를 주도한 이학수 삼성 부회장 대신 허태학 전 에버랜드 사장이 죄를 뒤집어 쓰도록 시나리오를 짜 수사와 재판 결과를 조작했다는 게 김 변호사측 주장이다. 삼성은 이 역시 “터무니 없는 궤변”이라는 입장이다.
이 사건으로 기소된 에버랜드 전·현직 사장은 항소심에서 유죄 선고를 받고, 대법원에 상고한 상태다. 검찰은 대법원이 유죄를 확정하면, 편법증여를 지시한 혐의로 이건희 회장을 수사한다는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그러나 증인 조작 물증이나 정황이 나올 경우 대법원의 유죄 확정 이전에 이 회장 조사 등 검찰 수사 계획이 앞당겨질 가능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