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전 각각 고교생 아이들을 두고 재혼했던 김상훈(가명·48)씨 부부는 재혼한 지 3년 만에야 집을 합쳤다. 아이들이 적응하지 못할 것을 우려해 각자의 집에서 키웠다. 다만 일주일에 2~3번씩 양쪽 집을 오갔고, 서로 반찬도 쉼 없이 날랐다. 이들 부부가 집을 합친 것은 자녀가 모두 대학에 간 지난해였다. 김씨는 “아이들이 다 커서 이혼한 부모들을 이해할 때까지 기다렸지요”라고 말했다.
이혼이 어려운 만큼, 재혼도 어렵다. 재혼자 수는 2001년 9만9300명에서 2005년 12만6000명으로 해마다 늘고, 재혼가정의 이혼 상담 건수도 계속 늘고 있다. 이처럼 재혼 상대를 제대로 만나는 것도 쉽지 않고, 재혼이 ‘고민 끝, 행복 시작’이 될지도 장담할 수 없다. 재혼에 성공하려면 과연 어떻게 가정을 꾸려야 할까.
◆준비 없는 재혼, 재(再)이혼을 낳는다
첫 아내와 성격 차이로 결혼 2년 만에 헤어진 최기민(가명·39·회사원)씨는 지난해 6월, 이혼한 지 1년 반 만에 재혼했다. 둘 다 자녀가 없어서 별 문제 없으리라 생각해, 만난 지 두 달 만에 전격 결혼식을 올렸다. 그러나 최씨의 아내는 낭비벽이 심했고, 재혼한 지 얼마 안 돼 아내의 빚 2000만원 때문에 부부 공동명의로 된 아파트를 가압류하겠다는 은행의 통보가 왔다. 최씨는 "너무 성급하게 재혼을 결정했다"며 후회하고 있다.
한국가정법률상담소에 따르면, 재혼가정의 이혼 상담은 2002년 13.3%, 2004년 14.7%, 2006년 15%로 매년 늘고 있다. 이명숙 변호사는 “재혼한 지 1~2년도 지나지 않은 40~50대 부부들이 이혼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며 “대부분 자녀문제, 경제문제 등이 원인”이라고 말했다.
◆자녀문제 해법이 재혼가정 성공의 갈림길
학원강사 진모(42·여)씨는 2005년 7월 딸(11세)을 데리고 세 번째 결혼식을 치렀다. 두 번째 이혼을 겪으면서 다시는 결혼하지 않겠다고 마음 먹었지만, 홀로 늙어갈 노후에 대한 걱정이 앞섰다. 그러나 재혼 후 남편의 두 아들(14세·17세)은 진씨에게 ‘한집에 사는 손님’ 같았다. “아이들은 친엄마한테 집안일을 모두 말하고, 고민이 있어도 친엄마와만 상의했어요.” 결국 1년 만에 두 아들은 친엄마에게 보내고, 딸은 외국으로 유학을 보냈다.
이혼자들은 재혼이 생각만큼 쉽지 않다고 입을 모은다. S결혼정보업체 오윤경 팀장은 “재혼 때는 상대방의 외모·학력보다 경제력과 서로의 자녀를 받아들일 수 있을지를 중요시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특히 남편과 아내가 각각 아이를 데리고 재혼하는 ‘뻐꾸기 가족(남의 둥지에서 새끼를 기르는 뻐꾸기에 재혼가정을 빗댄 말)’은 더 힘들다. 한 결혼정보업체가 재혼부부 223쌍에 대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재혼생활을 괴롭히는 요인 1순위가 자녀문제(46%)인 것으로 나타났다.
◆행복한 재혼을 하려면
1999년 재혼한 황모(38)씨 부부는 4명의 자녀를 기른다. 부부 모두 2명씩의 자녀가 있다. 황씨는 “처음엔 아내의 딸들이 ‘아저씨가 뭔데 나를 혼내느냐’고 반항했지만, 그럴수록 부모로서 엄하게 혼을 냈다”며 “칭찬을 할 때도, 벌을 줄 때도 4명을 똑같이 대한 것이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황씨는 “아내는 나의 아이들에게 용돈을 주고, 나는 아내의 자녀들에게 주는 식으로 서로 교감을 넓혔다”고 말했다.
4년 전 이혼한 이모(68·부동산임대업)씨는 1남1녀의 자녀들이 재산 문제로 재혼을 만류했다. 하지만 그는 이혼자 모임에서 만난 여성과 사랑에 빠졌다. 결국 그는 자녀들에게 재산분할을 먼저 해주는 조건으로 재혼에 성공했다. 자녀와 유산 갈등을 피해 아예 ‘혼인서류’ 대신 ‘사망 시 부동산 증여와 월 100만원씩 지급’이란 공증으로 재혼한 경우도 있다.
아내와 어머니의 갈등 때문에 이혼했던 대기업 임원 김모(50)씨는 재혼하면서 가장 먼저 부모님의 집을 따로 마련해줬다. 어머니와 며느리가 또 다시 갈등을 일으켜 결혼생활에 문제가 될까 우려해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