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쉰들러 리스트’에서는 제2차 세계대전 시 1,100명의 유대인을 구한 체코슬로바키아 출신의 독일 나치 당원 오스카 쉰들러(1908~1974)의 업적이 다큐멘터리처럼 이어진다.

이 영화는 흑백 화면이 서서히 드리워지며 시작된다. 1939년 9월, 독일군은 폴란드를 점령하고 폴란드 내의 모든 유대인들을 대도시인 크라코프로 이주시킨다. 이곳에 도착한 유대인들은 별 표시의 완장을 차야 했으며, 모든 가족을 등록하고 집과 사유재산을 약탈당한다.

오스카 쉰들러(리암 니슨 분)는 폴란드 주둔 나치로부터 식기류를 납품할 수 있는 허가를 받고 법랑공장을 운영한다. 전직 회계사인 유대인 이작 스턴(벤 킹슬리 분)을 공장장으로 임명하고, 많은 유대인을 노동자로 고용한다. 고용된 유대인에게는 나치가 전쟁에 필요한 일꾼이라는 표시의 파란 카드를 발급해준다. 쉰들러의 사업은 날로 번창한다. 그러는 가운데 수용소 내에서는 유대인 학살 계획이 착착 진행된다.


1943년 3월 13일, 수용소장 아몬 커트(랄프 파인즈 분)의 지휘 아래 유대인 대량 학살의 서곡이 시작된다. 나치는 거주지에 있는 유대인을 집결시키고, 무조건 현장에서 사살한다. 줄을 세워놓고 사살하는 나치들의 연속적인 총소리. 아비규환의 현장이다. 그리고 1944년 8월, 아몬 커트는 학살된 1만 명 이상의 유대인 시체를 파내어 불태운다. 시체를 태운 재들이 눈처럼 떨어진다. 아몬 커트는 쉰들러에게 "40일 뒤에는 수용소에 살아 있는 유대인들도 죽음의 아우슈비츠로 보낼 것이오"라고 말한다.

쉰들러는 또다시 아몬 커트와 커다란 거래를 한다. 그는 고향인 체코 브룬눌리츠에 탄피 공장을 운영한다는 명목으로 아몬 커트에게 유대인 한 사람 당 돈을 주기로 하고 죽음의 수렁에서 벗어날 명단을 작성하여 그들을 데리고 간다.

1945년 8월, 독일은 연합군에 항복한다. 공장의 유대인들은 금니를 뽑아 녹여 쉰들러에게 전달할 감사의 반지를 만든다. 유대인들이 도열해 있는 가운데 쉰들러 부부가 떠나려 하고 있다. 전범으로 몰릴 경우 쉰들러가 제시할 수 있도록 이들 모두가 서명한 그 동안의 경위가 담긴 진정서와 감사의 금반지를 이작 스턴이 전달하면서 말한다. "반지에는 '하나의 생명을 구하는 자는 세상을 구하는 것 Whoever saves one life, saves the world entire'이라는 탈무드에 나오는 글귀가 쓰여 있습니다."

차에 올라타고 떠나는 쉰들러 부부를 바라보는 쉰들러 리스트로 목숨을 건진 유대인들. 가슴이 찡한 이스라엘의 민속음악이 잔잔히 흐르는 가운데 유대인의 행진이 이어진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자막으로 흐르며 영화는 끝난다. "오늘날 폴란드에 살아남은 유대인은 4천 명이 안 된다. 반면 쉰들러로 인해 살아남은 유대인들의 후손은 6천 명 이상이다. 학살된 6백만 명 이상의 유대인의 명복을 빌며…."



논제: 현대사회에서의 인간 이성의 도구화

이성은 야만이라는 단어가 내포하고 있는 무절제, 폭력, 잔인함, 횡포 등의 성질과 명확히 구분되며 이러한 개념과 반대의 개념들을 대표하는 상징성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현대사회의 위기는 이성의 결여나 이성의 상실에 따른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성의 변질과 왜곡 즉 이성의 도구화에 따른 결과이며 다양한 모습으로 발현되고 있다.

나치 치하 아우슈비츠에서 저질러진 인간의 광기는 이성의 도구화에 따른 '인간의 비인간화'의 한 상징이 되었다. 광기에서 비롯된 홀로코스트는 애국심이나 민족애 혹은 인류 구원 등과 같은 구호로 포장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냉혈한적인 야만(野蠻) 행위가 환각 상태에서나 비이성적인 상태가 아니라 이성이 뚜렷이 살아있음에도 불구하고 비인간적인 야만 행위를 저지르는 것이다.

나치와 같은 비인간적인 야만 행위나 현대사회에서 끊이지 않는 전쟁과 테러와 갈등, 자유의 억압과 핍박 등은 문명 이전의 생존 본능이나 야만적 본성에 근거하여 벌어지는 사건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인 도구적 이성으로써 정신무장을 확고히 하여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현대사회에서 이성은 도구적 이성으로 전락해버린 상태이다. 세계 곳곳의 전쟁과 갈등은 이성이 이데올로기를 위한 수단으로 전락한 데에 기인한다. 도구적 이성이 비판적으로 거듭나야만 현대사회에서 건전한 인간성을 회복할 수가 있다. 이제 이성의 비판적 성찰만이 이성 스스로를 구할 수 있으며 나아가 인간성 회복까지도 성취할 수 있을 것이다.

>> 더 생각해볼 거리

① ‘쉰들러 리스트’의 홀로코스트는 ‘잃어버린 인간성’을 여실히 보여준다. ‘야만’은 ‘문명’과는 상반된 단어이다. ‘인간의 비인간화’, ‘문명사회도 야만일 수 있다’라는 역설적인 표현에 현대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상을 대입해 보자.

② 나치에 의해 홀로코스트를 당했던 유대인들이 이제는 팔레스타인에서 2천년 이상 살아온 사람들을 몰아내고 이스라엘을 건국한 뒤 그들에게 피의 학살을 퍼붓고 있다. 이에 대한 느낌을 말하고, 어떻게 해결해야 한다고 보는지 토론해 보자.

③ 홀로코스트를 그린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피아니스트’와 비교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