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연인들이 사랑을 시작하고, 이별을 고한다. 그리고 이별의 순간엔 언제나 최후의 통첩 같은 한마디가 던져진다. “좋은 사람 만나길 바래.”

대중가요의 노랫말 같은 이 구절은 이별을 통보하는 클래식 중의 하나다. 고전적 문장이 아닌 독창성을 발휘하는 사람들도 있다. 문학을 전공했다면 이런 식이다. “모든 것들이 꿈만 같았어.” 수학과 졸업생이라면, “넌 언제나 답이 나오지 않는 아이였어.” 세일즈맨 4년차 대리 직급이라면, “더 이상 너에게 팔 것이 남아 있지 않아.” 과장된 이야기라고 여기겠지만, 헤어짐 속에는 그 헤어짐의 숫자만큼 다양한 말들이 등장한다. 때때로 이 마지막 말들은 문신처럼 머리에 남아 꽤 오랫동안 사람들을 괴롭힌다.

단순히 ‘우리 사이가 이젠 끝난 거야’라는 의미만을 담고 있다면 상관없다. 문제는 해석불가의 이상한 문구들이 사용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보자. 한 남자가 한 여자에게 이렇게 말한다. “널 처음 만난 날부터 이런 날이 올 걸 알았어.” 도대체 무슨 뜻일까? 처음 만난 날부터 헤어질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뜻일까? 아니면, 그 분이 오셔서 ‘네 앞의 저 사람과는 헤어질 팔자야!’라고 계시라도 주셨다는 것일까? 또 다른 예, 한 여자가 한 남자에게 말한다. “넌 내가 마음을 준 유일한 남자였어.” 이건 또 무슨 말인가? 자신의 인생에 유일한 남자였다는 것인가? 만난 남자는 많았지만 마음까지 열었던 것이 처음이라는 것일까? 말 그대로 마지막으로 남긴 이야기니 그 명확한 의미를 상대에게 물어 볼 기회도 없다.

라디오 방송에서 연애 상담 코너를 진행하다보면, 종종 그와 그녀의 마지막 말을 해석해 달라는 요청이 들어온다. 한 때나마 사랑했던 사람이니, 그가 남겨 놓은 알쏭달쏭한 대사의 행간을 읽고 싶은 것이다. 하지만 이 해석이 만만치가 않다. 2차 대전 당시 독일군의 이니그마 암호보다 더 헷갈리는 것이 과거 연인의 마지막 한마디다. 직설적인 화법인 것 같으면서도 어딘가 은유적인 표현들로 이루어져 독해를 방해하고, 낭만적인 표현이라도 플래쉬 백을 통해 의미를 가르쳐주지 않으니 불친절하긴 마찬가지다. 사람이란 ‘상대에게 내가 어떤 모습으로 보였을까’에 집착하는 존재이다. 그러니 대상은 사라졌지만, 그가 남긴 한마디를 생각하고 또 생각한다.

카페에서 물잔을 집어 던지며 감정을 몽땅 쏟아내며 헤어진 것이 아니라면 언제나 폼 나는 대사가 이별에 등장한다. 아쉬움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 화려한 단어들의 등장이 멋쩍을 만큼 그 뜻은 의외로 싱거울 만큼 간단하다. 끝까지 상대에게 멋있어 보이고 싶어 만들어낸 의미 없는 치장을 걷어내면, ‘내가 먼저 이별을 고했지만, 미워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흠담은 하지 말아 달라’는 소박한(!) 바람이 있을 뿐, ‘우린 끝이야’라는 뜻의 동어반복인 것이다. “헤어지지만 너만큼 사랑한 사람은 다시 만나지 못할 거야.”라는 이야기는 “모두 다 잘 마무린 된 거라고. 알지?” 이상의 의미는 없다. “지금은 떠나지만, 언젠간 널 다시 찾아갈 거야.”의 뜻은 “나 이제 가도 되지?”의 변형 버전이다.

영화 ‘러브 스토리’에서 여주인공 알리 맥그로는 불치병으로 죽어가며 라이언 오닐에게 이런 마지막 말을 남긴다. ‘사랑이란 미안하다고 말하지 않는 것.’ 우리 아버지 세대에 속하는 연인들은 이 대사에 눈물을 흘렸다. 죽음을 앞두고 있으면서도 어찌 이토록 아름다운 화법을 구사할 수 있단 말인가? 대사에 감동받은 사람들은 극장 문을 나서며 나름대로의 이별 대사들을 연습했다. 그 결과로 오늘날의 고전, ‘좋은 사람 만나길 바래’나 ‘행복해라’ 등이 이별 지침서에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영화 속 알리 맥그로의 대사 역시 ‘나 이제 당신을 더 이상 볼 수 없다’에 불과하니 그 아류도 앞의 의미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상담을 요청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해주는 말이 있다. ‘그가 남긴 마지막 말은 잊어라. 그 말엔 아무런 의미도 담겨 있지 않다’. 연애라는 한 권의 책을 끝내며 그저 멋진 사인을 남겨두길 원하는 것뿐이다. 현란한 단어들이 사용되는 것은 이별의 아쉬움 때문이며 지난 시간을 영화처럼 멋지게 포장하기 위함이다. 그러니 결국 두 사람의 만남과 자신을 미화시키기 위한 의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의 의미를 알 수 없는 마지막 말이 몇 년 동안 귓가를 맴돌았어요. 그는 왜 이런 잔인한 행동을 하고 떠난 거죠?” 이런 물음을 던지고 답을 얻지 못한 사람들이라면 앞선 이야기들이 이제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당신이 던진 말처럼 그의 말에도 별 뜻 담겨 있지 않다는 것을 기억해 둔다면, 뒤돌아섬이 조금은 더 가볍게 느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