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잔디밭에 모여 있던 중년 신사들은 새로운 얼굴이 교문에 들어설 때마다 환호성을 질렀다. “어이, 저게 대체 누구야?” “LA에 산다는 동식이 아냐.” 어느새 머리가 희끗희끗하게 세기 시작한 고교 동창들은 용케도 30년 전 친구를 한눈에 알아보고 달려가 손을 덥석 움켜쥐었다. 교내 스피커에서 “은혜로 열려진 기름진 밭/귀엽게 길리는 새나무 싹”으로 시작하는 교가가 흘러나오자 잠시 감상에 젖던 동문들은 “양정~ 양정~ 양정”이라는 후렴구 대목에선 교가를 따라 부르기도 했다.

6일 오후 서울 양천구 목6동 양정고등학교(교장 김창동)에선 양정고 60회 동문회(1977년 졸업) 졸업 30주년 홈커밍데이가 열렸다. 이 학교 60회 동문들은 졸업 30주년을 맞아 조선일보 ‘스쿨 업그레이드, 학교를 풍요롭게’ 캠페인에 동참했다. 그간 자신들이 모은 성금 2500만원으로 17인치 LCD 모니터 100대와 프린터 6대를 학교에 기증했고, 이날 홈커밍데이에선 그 전달식이 열렸다. 천창돈 양정고 60회 동문회장(49·㈜스카이쉬핑 대표이사)은 “사회에 나가서도 늘 학교에 작은 정성을 표하고 싶었는데 마침 조선일보 ‘스쿨 업그레이드’ 캠페인과 취지가 맞아 참여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 행사를 홍보하는 것 같아 쑥스럽지만, 이를 계기로 더 많은 학교 동문들이 모교 발전을 도우면 자연스레 ‘스쿨 업그레이드’가 되지 않겠느냐”고 했다.

▲ 양정고 60회 동문들이 지난 6일 모교에서 열린 졸업 30주년 기념 홈커밍데이에서“양정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졸업 30주년을 맞아 스쿨업 캠페인에 동참한 이들은 모교에 2500만원 상당의 물품을 기증했다.

졸업 10주년, 20주년, 30주년 때마다 동문들이 학교에 모여 작은 행사를 갖는 것이 양정고의 오랜 전통. 30주년을 가장 성대하게 기념한다. 이날 행사장에 참석한 사람들은 60회 동문 140여 명, 배우자 40여 명, 현직 교사와 은사 각 20명, 후배 10명 등 모두 230여 명이었다. 세월을 잊고 잠시 과거로 돌아간 이들은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 학교 잔디밭에서 바비큐 파티를 하며 ‘그때 그 시절’로 돌아갔다.

동문들 상당수가 졸업 이후 학교 방문이 처음이라 감회가 새로운 듯했다. 특히 예전 만리동 교사(校舍)에서 1988년 현재의 양천구 교정으로 옮겼기 때문에 첫 방문이 많았다. 새 교사를 처음 본 동문들은 “빨간 벽돌 건물이 예전 학교 분위기를 살린 것 같다”고 했다.

“우리 학교는 월계수 나무가 유명했어요. 우리 대선배인 손기정선생이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에서 우승하고 썼던 그 월계수의 씨앗을 받아 심은 나무였지요.” 동문회 전재우 고문(49·대우건설 상무)이 설명하자, 친구들도 “맞아, 맞아” 하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유규종 운영위원(49·서울사이버대 외래교수)은 “‘양배전(배재고와의 친선 럭비경기)’도 빼놓을 수 없어요. 그때마다 재학생·졸업생은 물론 이웃 주민들까지도 보러 왔지요”라고 말했다. 동문들은 이어 학창 시절 당시 선생님 별명과 혼났던 일들을 떠올리며 오랜만에 마음껏 웃었다. 30년 만에 되돌아보는 추억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끊임없이 이어질 것 같았다.

떠들썩하게 이야기꽃을 피우던 동문들은 기념 촬영 순서가 되자 카메라를 향해 활짝 웃으며 외쳤다. “양정! 양정! 양정! 모교를 위해 동문들이 앞장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