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조선이나 컨테이너선, LNG선 등 모든 상선의 조종실을 포함한 휠하우스와 엔진기관실은 선체의 뒤쪽에 위치해 있다. 뱃머리(船首)에 있으면 시야가 확 트여서 좋을 것 같은데, 굳이 선체 뒤쪽에다 설계한다. 이유가 뭘까? 결론부터 말하면, 선박의 연비(燃比)를 좋게 하고 주어진 공간 안에 화물을 최대한 많이 싣기 위해서다.

선박도 자동차와 마찬가지로 엔진에서 동력을 생산하면 크랭크 축(Shaft)을 통해 꼬리쪽(船尾) 프로펠러에 전달, 그 추진동력으로 앞으로 나아간다. 따라서 꼬리쪽 프로펠러와 엔진의 거리가 짧아야 크랭크 축의 길이도 짧아지고, 엔진 동력을 전달하는데 마찰저항도 적어 동력손실을 최소화 할 수 있다. 또한 크랭크 축이 차지하는 공간도 줄여 화물을 더 많이 실을 수 있다. 엔진이 뒤쪽에 있어야 하는 이유다. 반대로 엔진이 선체의 앞부분이나 가운데에 있다면 프로펠러와 이어주는 크랭크 축의 길이도 길어져 제작비는 물론, 동력 손실이 많아지고, 짐을 싣는 공간까지 줄어들게 된다.

현재 1만TEU급 컨테이너선에 들어가는 크랭크 축은 약 25m에 무게만도 370여t에 이르는 엄청난 규모다. 길이가 300m가 넘는 대형 선박에 엔진이 앞쪽이나 중간에 위치한다면 크랭크 축은 그에 따라 엄청나게 커져야 할 것이다. 지금도 조선소에서는 ‘짧게, 더 짧게’를 외치며 크랭크 축을 줄이는 연구에 땀을 쏟고 있다.

휠하우스를 기관실과 함께 배치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기관실은 엔진의 작동에 관련된 수많은 설비와 장비가 있어야 하고, 엔진의 배기가스를 배출하는 굴뚝이 선체 위로 돌출돼 있어야 한다. 따라서 기관실이 위치한 곳에 휠하우스를 배치하면 별도의 구조물을 만들 필요가 없어 선박 건조 비용은 물론, 선체의 무게도 줄일 수 있다.

하지만 여객선은 예외다. 승객이 기계장치로부터 멀리 떨어짐으로써 쾌적한 여행을 즐길 수 있도록 하고, 승객의 안전을 위해 시야를 넓게 확보할 목적으로 기관실과 휠하우스는 선체의 앞쪽에 위치한다. 정찰이나 전투를 주임무로 하는 군함도 마찬가지다. 조선소는 선박을 가장 효율적인 구조로 진화시켜 왔으며, 진화의 속도는 하루가 다르게 빨라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