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유명 CEO 중 절반 가까이가 맏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미국 일간지 'USA투데이'는 전 세계 CEO 1582명을 조사한 결과 43%가 맏이였다고 보도했다. 세계 최대의 CEO 협회인 '비스타지' 회원을 대상으로 이뤄진 이번 조사에서 막내는 23%, 첫째나 막내를 제외한 나머지는 33%에 그쳤다. 이런 경향은 국적이나 성별과 상관없이 나타났다.
"몇째세요", "형이나 동생이 있나요?" 흔히 처음 만 났을 때 상대에게 던지는 질문들이다. 상대의 답에 따라 우리는 그 사람을 대략 가늠해 볼 수 있다. 형제가 많은 가정의 장남이라면 왠지 생활력 있고 책임감이 있을 거 같고, 오빠만 있는 막내라면 철없이 응석이나 부릴 것 같고….
# 세계 유명 CEO 중 43%가 장남·장녀
우리는 사람을 보는 순간, 그리고 그 사람을 알아가는 동안 많은 잣대를 가지고 판단하는 경향이 있다. 곱슬머리인지, 뚱뚱한지, 말랐는지와 같은 외모나, 급하게 말하는지 느릿하게 걷는지와 같은 행동, 그리고 혈액형 등에 의존해서 판단하는 경우들이다. 이 중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잣대 중 하나가 출생순위일 것이다. 착실하지만 소심하고 보수적인 맏이와 반항적이지만 대범한 둘째. 많은 문학 작품과 영화에서 수없이 등장하는 상투적 묘사 중 하나이다.
그런데 이러한 우리의 판단이 그저 편견에 그치는 것일까? 최근 USA투데이에 실린 기사에 의하면 최고경영자(CEO) 1580여명 중 43%가 첫째였으며, 23%가 막내, 그리고 첫째와 막내를 제외한 나머지는 33%였다고 한다. 또 하버드 대학의 한 강의에서 학생들에게 첫째만 일어나보라고 하자 그대로 자리에 앉아있는 사람은 20%에 불과했다고 한다. 맏이는 가정에서뿐 아니라 사회에서도 첫째일까? 많은 맏이들이 둘째, 셋째보다 더 높은 지능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실제로 심리학 연구에 의하면 맏이는 지능이 높고 또 정치적 지도자들 중에도 맏이가 많다고 한다. 1973년도에 이루어진 유명한 연구로, 네덜란드에서 출생한 38만6114명의 남성을 출생순위와 지능에 관해 알아본 결과, 맏이의 지능지수가 둘째보다, 둘째의 지능지수는 셋째보다 높았다. 이는 여러 나라에서도 반복적으로 확인되었다.
그 이유는 맏이가 생물학적으로 뛰어나다기보다 가정에서 경험하는 독특한 지적 분위기에서 찾을 수 있다. 출생 이후부터 맏이가 주로 접하는 주변 사람들은 부모나 할머니와 같은 성인이다. 자신보다 지적 수준이 더 높은 성인들과 상호작용해야 하므로 지적 자극도 풍부하고 언어나 지적능력 역시 빨리 발달하게 된다.
반면 둘째는 첫째에 비해 성인과 함께하는 시간이 아무래도 적은데, 그것은 손위 형제와 많이 접촉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출생순위가 내려갈수록 아직 지적으로 발달하지 못한 손위 형제들과 접촉하는 시간이 많기 때문에 성인만을 상대하는 첫째보다 지적으로 덜 자극적인 환경에 놓이게 된다. 이로 인해 둘째, 셋째로 내려갈수록 첫째만큼 지능이 좋지 못하다.
물론 논란은 있었지만 이 고전적 연구는 최근 노르웨이에서 실시된 연구에 의해 다시 한번 입증되었다. 1967년부터 1976년 사이에 출생한 아이들 24만1300명을 22년간 추적하여 조사한 결과 맏이의 IQ는 둘째보다 3% 더 높았다.
# 어른들과 접촉할 기회 많아 지적 자극 풍부
또한 첫째가 사망한 후 맏이 구실을 하면서 자란 둘째가 보통의 둘째보다 평균적으로 지능이 2.3% 더 높았다. 이것은 첫째로 태어난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첫째 아이로 키워지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출생 서열보다는 사회적 서열이 중요하다는 얘기다. 이것은 첫째 아이가 선천적으로 우수하게 태어난다기보다는 출생 이후 어떻게 키워지는가가 더 중요함을 보여준다.
이렇게 출생순위에 따라 지능이나 성격이 달라지는 이유에 대해 최근 설로웨이(Sulloway)라는 학자가 제시한 주장은 설득력 있다. 부모로부터의 일방적 영향만이 아니라, 아이가 가족 내에서 자신만의 위치를 차지하기 위해 머리를 짜내는 전략 때문에 출생순위에 따른 차이가생긴다는 것이다.
# 자녀 한 두 명 뿐인 현대 가정에 적용은 무리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부모의 관심을 둘러싼 형제간 경쟁과 전략을 짜는 과정이다. 맏이는 부모에게 많은 투자를 받으며 처음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자신의 위치를 아무런 방해물 없이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
그러나 동생이 태어나면, 부모의 관심은 줄어들고 맏이는 잃어버린 부모의 사랑을 되찾아야 한다. 부모는 맏이에게 "형이니까 모범을 보여야지!" 혹은 "동생을 잘 돌봐줘야지"와 같은 말을 자주 하고, 맏이들은 부모의 관심을 받기 위해 이런 기대에 보다 잘 순응하게 되면서 책임감을 키우게 된다.
그 결과 성인이 되었을 때보다 보수적이며 성실한 성격을 형성하게 되고, 한편으로는 자기 자리를 지키기 위해지배적인 성향이나 리더십을 가지게 된다.
반면 이후에 태어난 아동은 맏이에 비해 부모의 관심을 덜 받는 편이다. 이들의 가장 큰 숙제는 가족 내에서 첫째가 차지하지 않은 다른 가치 있는 위치를 찾는 것이다. 부모의 눈에 조금이라도 더 띄기 위해 손위 형제가 시도하지 않은 새로운 영역을 개척해야 하는 것이다. 이와 동시에 이들은 맏이가 가진 더 높은 지위에도 저항해야 한다.
그래서 첫째와 비교해, 손아래 형제들은 더 많은 경험을 하고자 개방적인 성향을 가지게 되며, 대인관계를 잘 형성하고, 뭔가 튀고자 하는 갈망 또한 크다. 첫째와의 평등을 주장하다 보니, 더 평등주의자적 관점을 가지게 되고, 권위나 순응의 압력에 저항하는 성격도 가지게 된다.
그러나 이런 고전적 연구 결과를 그대로 현대 가정에 적용하기엔 사실 한계가 있다. 현대에는 대부분의 가정이 한 명이나 두 명의 자녀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또 많은 형제들이 한정된 자원을 나눠 가졌던 과거와는 달리, 상대적으로 적은 수의 형제들이 이전보다 풍부한 자원을 공유할 수 있기 때문에 출생순위에 따른 차이는 예전만큼 극대화되지 않을 수 있다.
따라서 첫째라서 더 머리가 좋다든가 리더십이 있다고 단정 짓기는 어려울 것 같다. 무엇보다 한 인간의 가능성을 결정하기에는 출생순위가 너무나 단순한 잣대라는 점이다. 누군가의 가능성과 성취는 그의 성장환경과 교육, 그리고 그의 노력에 달려 있지, 출생순위라는 것만으로 사람의 가능성을 규정지을 수는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