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히 이 세상에 와서/지옥의 찌꺼기만 만들고 가네/내 뼈와 살은 저 숲 속에 버려두어/산짐승들의 먹이가 되도록 하라.’(조선 중기 희언 스님의 열반송)
불교 고승들은 삶의 마지막 순간에도 게송을 남긴다. ‘열반송’ 혹은 ‘임종게’라고 부르는 이 게송들은 한 수행자가 평생을 이어온 치열한 수행의 마침표이자, 세상과 제자들에게 전하는 깨달음의 흔적이다.
최근 발간된 ‘내 삶의 마지막 노래를 들어라’(이른아침출판사)는 고려시대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65명의 고승들의 열반송을 모았다. 열반송들은 역설과 비약으로 가득 차 난해하면서도 언어를 넘어선 어떤 경지를 느끼게 한다.
성철 스님의 열반송은 “일생 동안 남녀의 무리를 속여서/ 하늘 넘치는 죄업은 수미산을 지나친다”고 시작한다. 50년간 하루 한 끼로 생활하며 치열하게 수행했던 청화 스님은 “이 세상 저 세상/ 오고감을 상관치 않으나/ 은혜 입은 것이 대천계만큼 큰데/ 은혜를 갚는 것은 작은 시내 같음을 한스러워할 뿐이네”라는 임종게를 남겼다. 춘성 스님은 “여든 일곱 살았던 일이/ 일곱 번 넘어지고 여덟 번 거꾸러졌다가 일어남이라”고 노래했다.
삶과 죽음을 넘어서는 경지를 보여주는 경우도 많다. 일타 스님은 “생사와 열반이 일찍이 꿈”이라고 했고, 원각 스님도 “모든 부처가 세상에 나오지 않았고/ 또한 열반에 들지도 않았네/ 나고 죽는 것이 본래 없으니/ 찼다가 빈 것이 한 바퀴 달이로세”라고 말했다. 죽음을 ‘고향’으로 표현한 게송도 많다. 고려 때 나옹 스님은 “칠십팔 년 고향으로 돌아가니/ 이 산하대지 온 우주가 법계이네”라고 노래했고, 서운 스님도 “삼독으로 화탕지옥에서 한 평생을 지냈다/ 이제 몸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가니”라는 게송을 남겼다.
열반송이라는 형식 자체를 거부한 경우도 있다. 서암 스님은 2003년 임종을 앞두고 제자들이 열반송을 묻자 “나는 그런 거 없다”고 말했다. 그래도 제자들이 재촉하자 “정 누가 물으면 그 노장 그렇게 살다가 그렇게 갔다고 해라”는 말만 남겼다.
미국에 한국의 선불교를 전한 것으로 유명한 숭산 스님도 제자들이 “스님께서 열반에 드시면 저희는 어찌해야 합니까”라고 묻자 “걱정하지 마라, 걱정하지 말라, 걱정하지 마라, 만고광명(萬古光明)이요, 청산유수(靑山流水)”라고 말하고 입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