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법대는 2009년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개원(開院)을 앞두고 ‘김&장’의 신희택·박준 변호사, ‘율촌’의 윤지현 변호사를 특별채용하기로 했다. 율촌의 정영철 변호사는 9월부터 연세대 법대 강단에 서고 있다. ‘잘 나가는’ 이들 로펌 변호사들의 학교행(行)은 많은 사람들에게 충격을 안겨줬다. 법조인들은 “교수 월급은 이들이 로펌에서 받는 돈의 몇십 분의 일 수준일 것”이라고 말한다. 그들은 왜 이렇게 큰 경제적인 이익을 포기하고 학교행을 선택한 것일까?

◆그들은 왜?

신희택(55) 변호사는 국내 최대 로펌인 ‘김&장’의 간판 변호사다. 그는 기업 M&A(인수합병)분야에서 본지가 20대 로펌 대표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이 시대 최고 변호사’로 뽑히기도 했다. 서울대 법대를 수석 졸업하고 사법연수원을 수석으로 수료한 그는 굵직한 M&A사건에는 늘 이름이 거론됐다. 현재 김&장의 대표인 김영무 변호사의 후임으로도 유력하게 거론된 그는 “실무에서 배운 것을 정리하고 새 세대에게 전수하는 것이 보람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신 변호사는 “27년간 ‘김&장’에서 일했다. 나머지 10년 정도는 다른 방법으로 다른 보람을 위해 살아보고 싶었다”고도 했다. 그는 “일하면서 배운 많은 것들을 사회에 환원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로스쿨에 잠시 있다 김&장으로 다시 돌아올 것이라는 일부 추측에 대해서는 “그런 것은 생각해보지 않았다. 65세까지 일한다고 볼 때 법조 생활 40년 중 30년은 이미 썼고, 나머지 10년은 대학에서 쓰겠다”며 일축했다.

박준(53) 변호사도 “변호사 일을 통해 얻은 실무 경험이나 전문성을 사회에 환원해야 하는 기회나 장치가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라는 생각을 계속 해왔다”고 말했다.

서울대 법대에 수석 입학했던 박 변호사는 금융·증권분야 전문 변호사로 주요 대기업들의 해외증권 발행과정을 자문했다. 삼성그룹의 한 관계자는 “박준 변호사는 국내 변호사업계보다는 외국의 로펌 변호사들 사이에서 유명한 한국 변호사”라고 말했다. 박 변호사는 “제도 개선 공청회나 위원회 등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고, 증권거래법 학회 부회장을 하는 등 학회 활동도 다른 변호사보다 많이 하는 편이었다”며 “새로 시작되는 로스쿨 제도에 작게나마 도움이 되고 싶었는데, 좋은 기회가 주어졌다”고 말했다.

같이 서울대로 가는 법무법인 율촌의 윤지현(35) 변호사는 “연구하는 일이 더 적성에 맞는 거 같다”며 “상당한 경제적인 손실을 감수하고 가는 것이기는 하지만, 평소 하고 싶은 일이어서 회사와 가족이 이해해줬다”고 말했다.

율촌의 정영철(52) 변호사는 지난 1일부터 연세대 법대에서 미국회사법과 국제 M&A에 관한 강의를 영어로 하고 있다. 그는 “국비 장학생으로 3년 동안 미국 로스쿨에서 공부했다”며 “나라의 큰 혜택을 받았기 때문에 로스쿨에서 공부했고, 미국 로펌에서 일한 경험 등을 살려 국내 로스쿨이 제대로 자리잡는데 기여하고 싶다”고 했다. 그는 “물론 경제적으로는 상당히 큰 차이가 나지만,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은 경제적인 부족함을 뛰어넘는 더 큰 매력이 있다”고 했다.

◆다른 법조인들이 말하는 이유는?

로펌행을 선택한 변호사들은 이런 ‘점잖은’ 이유들을 댔지만, 다른 법조인들은 좀 더 ‘솔직한’ 이유를 댔다. 물론 각자의 위치에서 나름대로 판단한 추측에 불과하지만.

대법원의 한 판사는 “솔직히 돈을 벌만큼 벌었으니 이제 명예를 찾아가는 것 아니겠느냐”고 지적했다. 그는 “김&장과 같은 큰 로펌은 위로 갈수록 스트레스가 심하고, 실적이 적으면 밀려날 가능성이 크다”며 “그런 것에 비하면 대학 교수는 정년까지 할 수 있고, 사람들로부터 존경도 받으니 생활의 여유가 있다면 상당히 좋은 기회”라고 했다.

대다수 법조인들은 수입은 훨씬 줄어들지만 대학 강단에 선다는 것은 그것을 뛰어넘는 큰 명예라고 믿고 있다.

한 중견 변호사는 “그전에는 한 달 월급으로 받는 돈을 이제는 1년 동안 일해도 다 벌지 못하겠지만, 실무에서 한 일을 학계에서 이론화하는 작업은 이를 뛰어넘어 충분히 욕심 나는 일일 것”이라고 했다. 서울중앙지검의 한 부장검사는 “20년 넘게 로펌에서 일한 변호사들은 대부분 경제적으로도 여유가 있고, 해당 분야에서 최고 전문가로 손꼽히는 사람들”이라며 “그 정도 위치가 되면 후진들에게 알고 있는 것을 전수하고 싶은 마음도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대 법대를 나오지 않은 한 검찰 간부도 “교수가 된다는 것, 특히 우리나라 최고 엘리트가 들어간다는 서울대 법대 교수가 된다는 것은 상당히 명예로운 일”이라고 지적했다.

일부 법조인들은 김&장과 같은 대형 로펌이 새로운 제도인 로스쿨에 영향을 미치려고 간판 변호사를 보내는 것 아니냐고 해석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박준 변호사는 “개인 차원의 문제이지 로펌 차원 문제가 아니다”며 “로펌에서는 오히려 많이 만류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