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식 양복을 대신할 중국식 정장(中華裝)을 만들자.”

지난 1일 중국 상하이(上海)의 조간신문 동방조보(東方早報)는 사진 한 장과 함께 흥미로운 기사를 실었다. 사진은 마오쩌둥(毛澤東)을 닮은 나이 지긋한 한 노신사가 ‘중산복’(中山服) 같은 옷을 입고 서 있고 그 옆에서 디자이너가 치수를 재는 장면이다. 기사 제목은 ‘중화장(中華裝), 어제 처음 상하이에서 모습을 드러내다’.

이 기사에 따르면, 상하이의 수석 디자이너 원홍(聞紅)은 중국의 전통 디자인과 서양식 양복 제조기법을 결합하여 새로운 모양의 ‘중국식 정장’(이하 ‘중화복’으로 약칭)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 옷은 1912년경 손문(孫文)이 직접 고안하고 후에 마오쩌둥이 즐겨 입었던 중산복(‘인민복’이라고도 함)과 비슷하지만, 옷소매와 어깨선 등은 서양식 양복에 가깝다.

디자이너 원홍은 “이 옷을 만들면서 중국 전통의 선을 두르는 옷단기법(滾邊工藝)과 옷 앞자락에 가선을 두르는 기법, 전통의 양변 주머니 등을 채용했으나, 옷소매는 전통의 홑단 대신 서양식 겹단 방식으로 디자인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옷깃의 단추를 5개, 옷소매 단추를 4개 단 것은 지구촌 방방곡곡(五湖四海)에 널리 퍼지라는 뜻”이라고 덧붙였다. 이번에 내놓은 ‘중화복’은 색상별로 흑색·백색·회색·황색·커피색·미백색 등 6가지, 옷감별로 순모, 모·에틸렌 혼방, 화학섬유, 순면, 견직물 등으로 다양하다고 한다. 이 옷은 이미 중국의 국가지식재산국이 부여하는 ‘외관설계특허’를 획득했고, 곧 시장에 선보일 계획이다.

‘중화복’ 발표와 동시에 상하이 국제복장복식센터와 상하이 예술연구소는 조만간 ‘중화복장연구발전센터’를 공동으로 발족시켜, 중화복이 민족의 정장(正裝)이 되도록 노력하기로 했다고 동방조보가 전했다. 이와 관련, 전국방직공업협회 두위조우(杜鈺洲) 회장은 “중화복을 디자인하면서 단순히 겉모양만 중시할 게 아니라 전통복식의 특징과 현대의복의 장점을 결합하여 입는 사람이 편안하면서도 격조를 느낄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중국의 경제계와 예술계가 합심하여 ‘중화복’을 밀고 있음을 보여준다.

중국인들이 서양식 양복을 대체하기 위해 처음 고안한 중산복은 60~80년대까지 유행했으나, 지금은 거의 사라졌다. 농촌지역의 노인들이나 입을 뿐이다.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 원자바오(溫家�) 총리 등 국가 최고지도자들도 공산당 행사나 국제회의에서 양복을 입는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인들이 왜 갑자기 ‘중화복’이란 것을 들고 나왔을까. 인터넷 중국망(中國網)에 실린 다음 글에는 전세계를 점령한 서양식 패션에 대한 중국인들의 견제의식이 드러나 있다.

‘서양식 정장(西裝)은 세계패션 무대를 장악했다. 서양이든 동양이든, 국제교류 무대이든 민간의 사교장이든, 정장 하면 곧 양복을 말한다. 서풍동점(西風東漸)의 부산물이다. 중국의복의 생존공간은 줄어들고, 전통적 의복제조 기법은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우리는 중화문명의 계승자로서 전통문화를 보호할 의무가 있다.’

이런 의식 때문인지 중국의 의류시장에는 당대(唐代)의복인 당장(唐裝)이나 청대(淸代)의 치파오(旗袍) 등을 개량한 현대식 전통의상을 쉽게 볼 수 있다. 중국식 전통의복을 전문적으로 생산 판매하는 회사들도 전국에 수백 개에 달한다. 중국에서 전통의상은 한국보다 더 일상화돼 있다. 소위 ‘차이나 칼라’라 불리는 바로 세우는 깃을 활용한 현대식 의류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중국의 영화와 드라마도 전통의상을 적극 채용하여 전통미를 과시한다. 얼마 전 한국에서도 개봉된 장이머우(張藝謀) 감독의 ‘황후화(중국명 黃金甲)’는 남녀 주인공 저우룬파(周潤發)와 공리가 입은 황금색 당장(唐奬)을 통해 중국 전통의상의 화려함을 마음껏 과시했다.

중국인들이 ‘중화복’을 ‘띄우려는’ 배경에는 ‘전통문화의 부활’이라는 후진타오 정부의 문화정책이 작용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중국 중앙방송국(CCTV)은 수년 전부터 일반 시청자를 대상으로 한 유교·도교·중국역사와 문화에 대한 강좌를 대폭 늘렸다. 중국 정부는 또 공자(孔子)에 대한 제사를 국가 행사로 승격하고, 2010년까지 전 세계에 ‘공자학당’ 500개를 설립할 계획이다. 이런 흐름 속에서 나온 ‘중화복’은 서양식 양복을 대체하고 중국전통문화를 전 세계에 과시하기 위한 장기계획의 첫걸음인 셈이다.

하지만 인위적인 ‘중국식 정장’에 대한 비판도 제기된다. 중국의 한 지식인은 “패션이란 소비자들이 자발적으로 선택할 때 생명력을 갖고 장기적으로 성공하는 것”이라며 “중화복을 인위적으로 띄우거나 서양식 양복을 폄하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고 지적했다. 경제발전과 국력증대의 자신감에서 나온 ‘중화복’의 운명은 과연 어떻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