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게 먹기로 이름난 소식국(小食國) 일본에서 ‘곱빼기’가 유행이다. 맥도날드가 “혹시나” 하고 시험 판매한 초대형 햄버거가 이례적으로 팔려나가는가 하면, ‘많이 먹기’ 분야에서 챔피언에 오른 여성이 스타덤에 올랐다. 일본 언론은 이런 이례적 현상을 두고 ‘다이어트 스트레스’에 대한 반발로 풀이한다. 왜 이런 반발이 일어났을까?

◆소식국(小食國)에서 부는 대식(大食) 열풍

‘메가 맥(mega mac)’. 맥도날드가 내놓은 햄버거 이름이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 맥도날드의 대표적 햄버거인 ‘빅 맥(big mac)’의 형님 정도 된다. ‘빅 맥’보다 고기가 2장 더 들어가고 열량(750㎉)은 200㎉ 정도 더 높다. 이 햄버거가 상반기 일본에서 대히트를 쳤다. 판매 기간을 한정해 시험 삼아 내놓았다가 폭발적 반응 때문에 판매 기간을 두 차례 연장했다. ‘메가 맥’ 히트 덕분에 적자였던 일본 맥도날드가 흑자로 돌아섰을 정도다.

‘갸루 소네’. 작년부터 일본 TV에서 인기인 대접을 받는 스물 한살 여성이다. 키 162㎝, 몸무게 45㎏. 군살이 거의 없는 체형이다. 하지만 앉은 자리에서 우동 20그릇을 해치우고, 스시(생선초밥) 100개를 삼켜버린다. 일본 대식(大食) 분야의 여성 챔피언 자리에 올랐다. 갸루 소네의 인기 비결은 대중들의 두가지 이율배반적 욕구를 동시에 충족시켜준다는 점이다. ‘먹고 싶은 것을 많이 먹고 싶다’는 욕구, ‘날씬 하고 싶다’는 욕구다. 일본의 가장 대중적인 카레 식당인 ‘coco이치방’에선 밥의 양을 600g까지 늘려서 주문할 수 있다. 보통 200g, 300g 정도가 곱빼기에 해당한다. 600g을 주문하면 카레 접시에 밥이 산처럼 쌓여 나온다. 실제로 주문해서 완식(完食)하는 사람을 3번 본 적이 있다. 3명 다 20대로 보이는 청년이었는데 살찐 체격은 아니었다.

일본 대중식당에서 음식을 보면 ‘양이 적다’는 느낌을 받는다. 하지만 대부분 식당에 ‘오모리(大盛)’란 곱빼기 메뉴가 있다. 덮밥 체인 ‘요시노야(吉田屋)’에서 점심을 먹으면 손님 중 절반 정도가 ‘오모리’를 주문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식당에 따라선 ‘오모리’의 ‘오모리’, 즉 곱빼기의 곱빼기인 ‘도쿠모리(特盛)’ 메뉴를 준비한 곳도 있다. 일부이긴 하지만 ‘도쿠모리’의 ‘오모리’, 즉 ‘따따블’ 곱빼기에 해당하는 ‘야마모리(山盛)’ 메뉴를 내주는 곳도 있다.

◆일본의 다이어트는 공무원이 주도한다

도대체 ‘다이어트 스트레스’가 어느 정도이기에 ‘곱빼기 반발’까지 일어났을까?

한국과 일본의 다이어트 열풍에는 차이가 있다. 한국은 연예인이 선도했지만, 일본은 공무원이 열풍을 주도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 보건복지부에 해당하는 후생노동성 부(副)장관 2명이 다이어트를 선언하고 6개월간의 다이어트 성과를 인터넷에 공개했고, 한국의 도지사에 해당하는 사가(佐賀)현 지사 역시 다이어트에 따른 허리 사이즈 변화를 인터넷에 공개하기 시작했다. 정부 차원의 다이어트 운동에 참여해 땡볕에 조깅을 하다 쓰러져 숨을 거둔 지방 공무원도 있다.

일본은 아직 비만 대국이 아니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 자료를 보면 일본인의 하루 평균 섭취 열량은 미국, 프랑스, 독일 등 서구 국가는 물론 한국보다 낮다. 작년 말부터 세계적인 문제가 된 ‘트랜스 지방’의 경우 1인당 하루 섭취량이 기준치에 한참 미달하는 0.7~1.3g에 불과하다. 그래서 일본에선 ‘트랜스 지방’ 문제가 미국이나 한국처럼 요란한 사회 문제로 부각되지 않았다.

이런 일본에서 왜 갑자기 공무원이 호들갑인가? 재정 탓이다. 일본 후생성이 내건 다이어트 운동의 종착역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메타볼릭 증후군’(metab olic syndrome·내장 지방형 비만에 고혈당, 고지혈증, 고혈압 등 질환을 2개 이상 가진 경우)을 2015년까지 25% 줄여 의료 예산 2조 엔을 아낀다는 것이다. 후생성은 국민건강·양양 조사를 토대로 남성 2명 중 1명, 여성 5명 중 1명이 ‘메타볼릭 증후군’에 해당한다는 통계도 발표했다. 교토경제연구소에 따르면, 64㎏의 표준형 남성이 20㎏ 살이 불으면 당뇨병, 고혈압 등으로 연간 평균 의료비가 2.5배 올라간다.

◆일본은 국민을 배불리 먹일 수 없다

일본엔 '부자 나라, 가난한 국민'이란 말이 따라다녔다. 과도한 농업 보호 정책으로 식료품 값이 턱없이 비쌌기 때문이다. 1990년대 초반부터 이 말이 사라졌다. 쇠고기가 개방돼 일본인들이 싼 값에 쇠고기를 마구 먹기 시작한 무렵이다. 물가가 하락해 일본산 식료품 값도 덩달아 싸졌다.

하지만 모처럼 먹고 살만 하니 이번엔 정부가 가난해졌다. 불황 때 경기를 살리려고 돈을 마구 뿌려대다 보니 재정 적자로 나라빚이 천문학적으로 늘었기 때문이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를 합쳐 1000조 엔에 달한다. 다시 ‘부자 나라, 가난한 정부’란 꼬리표가 붙은 것이다. 국민들이 마음껏 많이 먹다가 미국처럼 비만사회로 돌변하면, 비만으로 인한 질병을 감당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재정이 고갈된 나라에선 국민도, 정부도 마찬가지다.

‘메가 맥’을 마구 먹어치우는 소식국의 대식(大食) 국민, 땡볕에 운동장을 달리는 대식 국민의 소식(小食) 공무원은 이런 구조에서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