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내내 촬영팀은 밥 대신 빵을 먹었다. 멀리 보이는 아이들을 보면서 목구멍으로 제대로 넘기지도 못했다. 미안해서, 아이들이 보는 앞에선 먹질 못했다.

여덟 살 여자아이 루빠 미자르. 루빠는 네팔의 카스트 중에서도 가장 신분이 낮은 수드라에 속한다. 사람 취급받지 못하는 계층이다. 마을 사람들을 보고 있으니 석기시대로 돌아간 듯했다. 아그레콜라 강을 따라 돌 깨는 소리와 강물 소리만이 적막을 가른다. 루빠는 4살 때 돌 깨는 일을 시작했다. 아버지의 빚 7만원 때문에. 우울하다.

▲ 루빠네 마을 사람들과 함께 한 정한 PD(앞줄 가운데).

루빠가 한 달 남짓 다니다 만 학교에 가던 날. 걸어서 1시간30분 거리다. 가는 길에 식당에 들러 밥을 먹었다. 루빠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식당밥을 먹었다. 공부만 할 수 있다면 팔이 없는 동생 병도 고쳐주고 결핵을 앓는 아빠와 마을 사람들을 위해 살고 싶다고 했다. 그 꿈을 생각하면서, 학교 안 빈 교실에서, 루빠는 서럽게 울었다.

교민 사회에 취재진 소식이 알려지면서 전 법무부 장관 꺼멀루씨와 6년째 네팔에서 봉사 중인 원불교 교무님 두 분이 마을을 찾아왔다. 루빠를 카트만두로 데려가 학교를 다니게 할 셈이었다. 그런데 루빠는 몸 불편한 동생과 가족을 두고 떠나지 않겠다고 했다. 눈물이 핑 돈다. “내가 가난하니 이렇게 사는 것은 운명”이라고 아이가 말했다. 맑은 아이가 그렇게 나에게 가르침을 줬다. ‘아워 아시아’ 네팔 편의 가장 큰 성과는 이런 것들이 아닌가 싶다. 떠나는 날 네팔 상공에서 잠시 눈을 감고 기도를 했다. 다시 보는 날까지 건강하세요. 그리움에 내가 견딜 수 없어 다시 찾아 올 겁니다, 나마스떼!

◆이들을 도우려면

언니·오빠로 1대1 결연 학교 가는데 月 1500원

루빠의 손에 연필과 공책을 쥐여주십시오. 166만 명에 이르는 우리 모두의 아이들이 지금도 학교 대신 채석장으로 가고, 매연 매캐한 카트만두 거리에서 버스 차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죄라곤 가난하다는 거밖에 없습니다.

체념과 분노로 현실을 살아가는 여덟 살 소녀 루빠, 그리고 기필코 성공해서 돌아오겠다고 집을 나온 잘생긴 아이 순버하둘. 이 아이들과 일대일 결연을 하고, 이 아이들의 친구와 언니·오빠가 되어주십시오. 한 달에 100루피(1500원)이면 루빠는 학교에 다닐 수 있습니다.

국제구호기관인 한국기아대책(KFHI·Korea Food for the Hungry International)이 네팔의 아이들과 일대일 결연 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네팔 현지에 파견돼 있는 스태프들이 독자 여러분의 편지와 온정을 직접 아이들에게 전달합니다. 보내주신 후원은 루빠와 순버하둘을 비롯해 네팔 아동 복지 사업에 사용됩니다.

▶문의 전화: (02)544-9544

▶ARS 후원: 060-700-0770(통화당 2000원 후원)

▶홈페이지: www.kfhi.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