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은 후기에 와서 정치적, 사회적으로 무질서하고 퇴폐한 모습을 면하기 어려웠다. 그 동안 나라의 도덕과 학문의 기반이었던 유교로는 백성들의 고통과 가난을 해결할 수 없다고 보고, 식자들은 새로운 이론을 도입하려 했는데, 그것이 이용후생(利用厚生)과 실사구시(實事求是)를 표방하는 실학(實學)이었다.

연암 박지원(1737~1801)도 당시의 사회상을 비판적인 눈으로 보고, 그러한 부조리를 극복하려면, 역시 실용성에 중점을 두는 실학밖에 없음을 인식하였다.

‘호질(虎叱)’은 ‘호랑이가 꾸짖다’라는 뜻이다. 산중에서 사는 대호(大虎)가 부하들과 저녁거리를 의논하다가, 선비고기가 가장 맛이 좋다고 하여 마을로 내려왔다. 마침 그 때 정(鄭)나라 어느 고을에서 사는 도학자 북곽(北郭) 선생은, 열녀상까지 받은 이웃의 동리자(東里子)라는 청상과부 집에서 그녀와 밀회 중 그녀의 성이 각각 다른 다섯 아들에게 쫓겨 도망가다가, 똥 구덩이에 빠졌다. 그는 그 구덩이에서 가까스로 나왔는데, 그 앞에 그 대호가 앉아 있었다. 그가 머리를 땅에 붙이고 목숨을 비니, 대호는 그의 위선을 크게 꾸짖었다.

이 작품에서 작가는 위선적 인물을 대표하는 북곽과 동리자를 내세워 당시의 양반 계급, 즉 다수 선비들의 부패한 도덕 관념을 풍자하였다. 즉 도덕과 인격이 높다고 소문난 북곽 선생은 결국 ‘여우’같은 인물이요, 온 몸에 똥을 칠한 더러운 인간이며, 끝까지 위선과 허세를 부리는 이중적인 인간임을 말하고 있다. 또한 정절로써 천자와 제후들에게까지 존경을 받는 과부의 다섯 아들이 모두 성이 다르다고 비꼰 것은 겉모습, 혹은 세상의 평판만으로 사람을 평가할 수 없음을 통렬히 풍자한 것이다.

‘허생전(許生傳)’의 주인공 허생은 남산 아래에서 사는 가난한 선비로 10년 계획을 세우고 공부를 하다가, 아내의 구박에 못 이겨 집을 나간다. 그는 그 길로 장안의 재벌 변씨를 찾아가 아무런 이유를 설명하지 않은 채 만 냥을 꾸어 달라고 한다. 그렇게 돈을 빌려 장사를 하게 된 허생은, 안성으로 가서 전국의 과실을 매점했다가 팔아서 10만 냥을 벌고, 제주도에 가서 그 돈으로 말총을 사서 또 막대한 이득을 올린다.

마침내 자신이 모은 엄청난 이득을 이용해 수많은 도둑 떼를 무인도에 데리고 가서 그들을 교화하였으며, 일본 나가사키에 양곡을 팔아 다시 거금을 모은 다음 그 일부를 바다 속에 던져 버렸다. 그리고 한양으로 돌아와 변씨에게 빚을 10배로 갚고, 다시 원래의 가난한 선비로 돌아간다.

이 소설은 연암의 작품 중 실학사상을 담고 있는 대표적인 것으로 청나라의 발달한 문명을 수입하고, 상공업의 진흥과 기술의 혁신에 힘쓰자는 그의 사상이 주인공의 행동과 말을 통해 표출되어 있다.

‘양반전(兩班傳)’은 양반을 매매하는 이야기다.강원도 정선 고을에서 살고 있는 한 양반은 학식이 높고 정직하고, 독서를 좋아하고, 어질기는 했으나 가난하여, 천 석의 관곡을 타먹고 갚지 못하다가 투옥되었다. 그 때 어떤 부자가 빚을 갚아주는 대신 양반 신분을 사기로 하고, 그 권리를 이양 받는다. 그런데 군수가 문권(文券)을 만들어야 한다며, 양반으로서 반드시 지켜야 할 형식적인 행동거지 하나하나를 열거해 기록하였다. 이에 양반이라는 지위를 좋은 것으로만 알았던 부자는, 양반의 특권 및 횡포에 대해 듣다가, 얘기가 다 끝나기도 전에 그런 양반은 도둑이나 진배없다며 도망을 친다.

이 작품은 새로운 시대에 걸맞지 않는 인간상을 해학적, 풍유적으로 고발하고 있다. 즉 무능한 양반과 부자가 된 평민 사이에서 이루어진 양반 매매사건을 소재로 해서, 사회적 모순을 안고 있는 전형적인 양반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어느 시대에나 한 사회에는 보수와 진보를 표방하는 세력들이 대립하기 마련이다. 또한 퇴폐와 부정이 있는가 하면, 정의와 윤리가 공존함으로써 궁극적으로는 사회가 정화되고, 인간의 문명은 발전한다. 박지원은 그러한 한 시대의 혼돈과 갈등을 소설의 주인공들을 통하여 적나라하게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