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변희재 빅뉴스 대표

극심한 흥행 가뭄에 시달리던 한국 영화계에 두 편의 흥행대작이 질주하고 있다. 5·18 광주항쟁을 배경으로 한 ‘화려한 휴가’와, 할리우드 버금가는 그래픽을 자랑하는 ‘디 워’가 각각 500만 관객 동원을 눈앞에 두고 있다. 이 두 영화의 흥행에는 지난해 1000만 관객 시대를 연 흥행작 ‘왕의 남자’와 ‘괴물’과는 분명히 다른 힘이 작용하고 있다.

첫째, 광주항쟁이라는 역사적 자산과, 현란한 SF 영상이 전체적으로 미흡한 작품의 완성도를 극복하고 있다. ‘화려한 휴가’의 경우, 배경이 광주인데도 두 주인공만 유독 표준말을 쓰는 등 리얼리티가 크게 떨어지고, ‘디 워’는 스토리의 짜임새가 매우 부족하다.

둘째, 영화 외적인 요소가 흥행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화려한 휴가’는 범여권의 대선주자들이 너도나도 관람하며, 미묘한 시기에 정치적 힘이 동원되고 있고, ‘디 워’는 한국의 SF영화가 세계 시장에서 성공하길 바라는 애국심이 뒤를 받쳐 주고 있다.

그러나 두 영화 간에는 결정적인 차이점도 있다. ‘화려한 휴가’가 진보 및 친여 언론, 그리고 영화 언론의 집중적인 지원을 받고 있는 데 반해, ‘디 워’는 영화계 내에서 지나칠 정도의 혹평에 시달리고 있다. 이 역시 두 가지로 분석된다.

첫째, 광주항쟁은 영화계와 지식계에 역사적 권위로 존재한다. ‘화려한 휴가’는 이러한 역사를 남녀 간의 최루성 멜로드라마로 대중화시켰다. 그렇다면 광주라는 역사적 자산을 상업적, 정치적으로 악용하고 있다는 비판도 가능하다. 특히 ‘디 워’에 대해 영화계에서 작품 외적인 요소로 승부한다는 비판을 쏟아내고 있다면 더욱 그렇다. 그러나 이러한 기준이 ‘화려한 휴가’에는 적용되지 않고 있다.

둘째, ‘화려한 휴가’의 제작진이 충무로 영화계의 대표적인 인물인 데 반해, ‘디 워’의 감독 심형래는 개그맨 출신이다. 특히 그는 “충무로에서 왕따를 당해 왔다”고 발언하는 등, 영화계의 권위에 도전하는 행보를 보여주고 있다. 영화계의 시선이 고울 리가 없다.

영화계가 ‘디 워’에 보내는 의혹은, 작품 자체가 아니라 애국심을 선동하여 흥행몰이에 나서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대한민국 문화산업계에서 영화계만큼 애국심에 호소해 온 곳은 없다. 한국영화가 70%의 시장점유율을 기록할 때에도 이들은 스크린쿼터 사수를 위해 애국심을 활용했다. 이에 대해 국민들의 시선은 싸늘했다.

심형래 감독은 오히려 이러한 대중의 심리에 보다 적극적으로 다가갔다. 충무로 영화계가 “미국영화 들어오면 한국영화 다 죽으니, 쿼터로 막아야 한다”는 방어적 애국심에 기댄 것과 달리, “관심 갖고 우리 영화를 봐 주면 미국 시장도 우리가 차지할 수 있다”는 공격적인 애국심을 자극한 것이다. 심형래 감독은 이미 1989년 ‘영구와 땡칠이’로 200만 명의 관객을 동원한 바 있다. 당시 최다흥행작 ‘장군의 아들’이 60만 명 정도였으니 기록적인 흥행성적이다. 즉 흥행력을 검증받은 심 감독이 SF기술로 중무장한 ‘디 워’로 1000만 명을 동원한다해도 그건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오히려 문제는 영화계이다. 여전히 관객을 신뢰하지 않고, 제도의 보호에 숨으려 하는 태도를 용납할 수 있는 시대는 지나갔다. 또한 제작과 배급의 수직구조, 거대 연예기획사의 권력화 등 영화계 내의 산적한 문제를 개혁하려는 노력도 보이지 않는다. 심 감독이 완전히 차별화된 장르로 미지의 영역을 돌파하는 동안 영화계 내에서는 진취적인 기획도, 새로운 대안 담론도 내놓지 못했다. 영화인들끼리 패거리를 지어 끼리끼리 돕는 행태도 못 고치고 있다.

‘디 워’의 흥행은 영화계 모두가 따라야 할 모범은 아니다. 그러나 이 영화를 대하는 영화계의 이중적 태도 때문에 이 자체만으로도 관객의 신뢰를 잃고 있다. 차라리 ‘디 워’를 대한민국의 영화로 인정하며, 한국시장만이 아닌 세계시장에서 한국영화의 대안을 모색하는 기회로 삼아 보면 어떨까? 최소한 개그맨 심형래가 그 점에서는 앞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