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븐 호킹이 우주의 역사를 단 198쪽에 담아낸 것을 보고 조지타운 대학 교수인 존 맥닐은 인류의 역사도 200쪽으로 담아낼 수 있지 않을까 기대를 건다. 하지만 혼자서 그 일을 하기엔 벅차다는 걸 깨닫고, 이미 800여 쪽에 이르는 인류 역사에 관한 책을 집필했던 아버지 윌리엄 맥닐에게 공동 작업을 제안했다. 윌리엄 맥닐은 ‘전염병의 세계사’ ‘세계의 역사’ 등을 쓴 세계적 역사학자다. ‘부자(父子) 역사학자’는 상호 방문과 전화 통화, 서신 교환을 통해 몇 년간 공동 작업을 진행했다. 그 결과물이 이 책이다.

여기서 말하는 ‘웹(web)’이란 “www.”로 시작하는 인터넷 용어가 아니다. 거미집이나 망을 뜻하는 사전적 정의처럼, 사람들을 서로 이어주는 연결 장치를 뜻한다. 우연한 만남, 혈연 관계, 종교 의식, 경쟁심, 적대감, 경제 교류, 생태적 교환, 정치적 협력, 군사 대결 등의 다양한 모습을 지닐 수 있다고 저자들은 말한다. 이런 방법론으로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식으로 세계의 역사 지도를 그려낸다.

15세기 세계에는 세 가지 웹이 있었다. 유라시아 대륙과 아프리카 북부를 포괄하는 ‘올드 월드 웹’, 안데스 산맥부터 멕시코 일대를 세로 축으로 잇는 ‘아메리카 웹’, 태평양 일대 섬들을 작게 있는 ‘퍼시픽 웹’이다. 고립된 것이 아니라 서로를 이어줄 수 있는 관계망을 지니고 있느냐가 웹의 존재 유무를 가늠 짓는 잣대라고 할 수 있다.

흔히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으로 상징되는 항해술의 발전과 해상 교역 역시 저자들에게는 ‘웹의 확장’을 뜻한다. 대략 1450년 이후 1800년에 이르는 350년의 기간 동안 전 세계는 점차 하나의 공동체를 형성하기 시작했다.

저자들은 웹의 확장이 가져오는 긍정적 영향과 부정적 영향을 동시에 기술한다. 1870~1914년 사이에 진행된 급속한 세계화가 불평등으로 치닫자, 분노한 사람들은 민족주의와 전쟁을 대안으로 택했다. 마찬가지로 1980년 이후 기술 개발과 정책이 결합되면서 세계화를 가속화시켰지만, 부와 권력이 집중됐고 빈부 격차도 점차 커졌다. 반면 웹은 생태계에서 인류의 위상을 전반적으로 강화하는데도 도움을 주기도 했다. 질병 발생률을 낮추고, 작물 수확량을 늘리는데 활용됐으며 인구 증과와 도시화를 촉진했다.

낙관과 비관이 교차하는 현재, 저자들은 지금까지 짜놓은 그물망을 조금 더 촘촘하고 세밀하게 짜야 한다고 제안한다. ‘면대면(面對面) 1차 공동체’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마치 세포 같은 1차 공동체들이 전 세계적인 웹에서 교란이나 방해 받지 않고 살아남을 때, 공생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이를테면 세계적(global)이면서도 동시에 지역적(local)으로 사는 법을 새롭게 배우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조심스럽게 예측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