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 이후 한국경제의 가장 중요한 특징 중의 하나는 고도 성장이다. 기존 연구 성과들은 박정희 정부 하에서 수립되고 실행된 경제개발계획이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고 본다. 이 책은 고도성장의 중요 요인이었던 경제개발계획을, 특히 그동안 연구가 별로 이루어지지 않았던 1950년대 후기와 1960년대 초기의 경제개발계획의 수립과 변화과정을 직접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된다.

저자가 이 책을 통해 해명하고자 하는 과제는 두 가지이다. 하나는 이승만 정부, 민주당 정부, 군사정부 초기에 수립된 경제개발계획이 공업화 전략이나 경제정책의 우선순위 등에서 어떤 성격을 갖는 계획인가를 밝히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왜' 초기의 경제개발계획이 1964년에 보완계획으로 변용되었는가 하는 것이다. 저자의 이런 문제의식은 '원형'과 '변용'이라는 이 책 제목에 잘 드러나 있다.

▲ 한국 경제개발의 상징과도 같은 경부고속도로.

우선 저자는 초기 경제개발계획의 성격을 밝히기 위해 경제개발계획의 수립에 참여했거나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람들의 ‘생각’을 분석하였다. 무상원조의 감소, 물가안정의 달성, 성장률 저하 등의 상황에서 경제개발계획의 필요성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됐지만, 경제개발계획의 주도세력, 경제정책(특히 환율정책)의 내용, 대기업에 대한 생각, 외자에 대한 생각 등에서 커다란 차이가 존재했음을 지적하였다. 저자는 이런 차이에 근거하여 당시 확산된 경제개발론을 ‘민간 주도형’ ‘국가 주도형’ ‘사회민주주의형’으로 유형화했지만, 동시에 서로 상이한 이들 경제개발론에서 공통점이 있음을 확인했다. 그는 “서로 다른 주장을 했던 사람들이 만든 경제개발계획 사이에서 왜 동일한 성격의 특징이 나타난 것일까?”(66쪽) 라는 의문을 제기하고, 이 문제에 답변하면서 경제성장의 기원을 식민지기의 유산으로 설명하려는 일부 연구자들의 주장을 비판하고 있다. 저자는 전통적 공(公)개념, 식민지 교육의 유산, 제국주의에 종속된 식민지 경제체제의 경험 등과 같이 내부적인 요인은 물론 한국 지식인과 관료들이 1950년대에 해외 유학, 연수 및 출장을 통해 학습한 서구의 후진국 경제개발론과 아시아 다른 국가들의 경제개발계획 수립 경험 등, 다양한 요인의 상호작용을 강조하고 있다.

저자가 지적하는 공통점은 정부의 적극적인 역할에 대한 인정, 균형성장 및 내포적 공업화 지향, 농업에 대한 강조 등이며, 이것은 초기 경제개발계획의 성격을 규정하는 것으로 경제개발계획의 ‘원형’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물론 경제개발계획에 대해 다양한 생각들이 존재했다는 사실과 이들 생각을 읽는 것은 아주 흥미롭다. 그러나 이런 생각의 차이를 서로 다른 경제개발론으로 유형화할 수 있을 정도의 차이가 존재하는지, 혹은 각각의 생각을 반영하여 수립된 경제개발계획에서 그러한 차이를 확인할 수 있는지는 그렇게 분명한 것 같지는 않다.

▲ 한국 경제개발의 상징과도 같은 포항제철소.

경제개발계획의 원형이 왜 제1차 경제개발계획이 시행되는 중간에 수정되었을까? 이 문제에 대해 저자는, 이 책에서 관심을 갖고 있는 1950년대 후기에서 1960년대 초기의 경제개발계획 수립 당시에서는 외부의 영향력이 내부의 동력보다 훨씬 강한 규정력을 발휘했다는 전제 하에서, 초기의 경제개발계획의 원형이 변용되는 것은 이러한 외부, 즉 미국의 영향력이 강하게 작용한 결과라고 주장하였다.

저자는 이것을 논증하기 위해 1950~1960년대 초기의 미국 대외정책을 자세히 분석하고 있다. 군사원조의 성격이 강하고 미국의 재정균형을 우선시하는 아이젠하워 정부의 뉴룩(New Look)정책 하에서는 저개발국의 ‘현상유지’는 가능하지만, 저개발국의 성장은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또한 저자는 미국의 대외정책의 변화를 주도했던 로스토우(W Rostow) 교수의 근대화론을 분석하였다. 저개발국의 경제발전에 더 많은 신경을 쓸 것과 저개발국의 자본 흡수능력을 높이기 위해 사회개혁이 필요하다는 로스토우의 주장은 케네디 행정부에 적극 받아들여져 미국 대외정책의 기조가 됐다.

▲ 1960년대 울산 공업단지를 시찰한 박정희 대통령(앞줄 왼쪽에서 두 번째)과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그 오른쪽 안경 쓴 이).

미국 대외정책의 변화는 곧 대한(對韓)정책의 변화를 가져와 이전의 안정중심의 정책에서 성장우선정책으로 바뀌기 시작했고, 이런 미국의 영향 하에서 초기의 경제개발계획이 수출주도의 성장정책으로 변용되었다는 것이다. 물론 저자는 초기 경제개발계획의 성격이 일부 남아 있는 상태에서의 변용이었다고 주장하지만, 미국의 영향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많은 문제가 남아 있는 것도 사실인 것 같다. 게다가 1960년대 초기에 이뤄진 경제정책과 제도의 전환과정에 대한 평가는 매우 논쟁적인 문제이다. 이 시기에 대한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한 분야가 아닌가 생각한다.

더 읽을 만한 책  

이완범의 ‘박정희와 한강의 기적: 1차 5개년계획과 무역입국’(선인, 2006)은 1960년대초 1차 경제개발계획을 연구한 책이다. 경제개발계획에 대한 이론적 접근과 제1차에서 7차까지의 경제개발계획의 내용을 잘 정리한 연구로는 강광하의 ‘경제개발 5개년계획: 목표와 집행의 평가’(서울대학교 출판부, 2000)를 들 수 있다. 군사정부의 경제개발계획의 수립에 직접 참여했고 군사정부의 핵심세력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던 박희범의 ‘한국경제성장론’(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1968)도 추천할 만하다. 1950년대 경제사회에 대한 개설적인 연구로는 이대근의 ‘해방후·1950년대 경제: 공업화의 사적 배경 연구’(삼성경제연구소, 2002)와 유영익 편 ‘이승만 대통령 재평가’(연세대학교출판부, 2006)를 들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