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정의 ‘봄봄’에서 우직한 데릴사위 ‘나’는 3년 7개월을 새경 한 푼 못 받고 머슴살이한다. 마름이자 장인이 ‘나’를 둘째딸 점순이와 혼인시켜 준다는 말만 믿고 버텨 온 세월이다. 점순이가 애초 약속한 나이 열여섯이 됐는데도 장인은 점순이가 덜 컸다며 계속 미룬다. 큰딸의 데릴사위를 10년 부려먹었던 장인은 이제 여섯 살인 막내딸이 자랄 때까지 ‘나’를 더 붙들 심산이다. ‘나’는 장인의 사타구니를 붙들고 늘어진다.
▶고구려에선 남자가 혼인하면 여자 집에 데릴사위의 집 ‘서옥(壻屋)’을 지어 살게 했다. 신랑 신부는 아이를 낳아 웬만큼 키운 뒤에야 남자 집으로 갔다. 고려시대까지도 일정기간 여자 집에 가서 사는 처가살이가 많았다. 고려 말~조선 초쯤에야 여자가 남자 집으로 들어가는 시집살이가 보편적이 됐다. 가부장적 질서를 내세우는 유학자들이 득세하면서다.
▶1000억원대 재력가가 결혼정보업체를 통해 공모한 데릴사위에 270명이 지원했다는 소식이다. 당초 열흘쯤 지원자를 받으려 했다가 사람이 몰리자 이틀 만에 마감했다고 한다. 딸만 둘 둔 60대 후반의 이 사업가는 38세 맏딸의 배우자를 구하겠다고 나섰다. 조건은 ‘장남 아닌 기독교 신자, 전문직’이다. 딸은 미국에서 석사학위를 받은 대학강사로 20억원 넘는 재산을 갖고 있다고 한다. 결혼업체는 지원자에서 5명을 가려내 1주일마다 차례로 맞선을 보일 예정이다.
▶여자 집에 들어가 정해진 기간 동안 노동력을 바치고 그 대가로 결혼하는 데릴사위를 예서(豫壻)라고 한다. 결혼 후 처가에 살면서 가사를 돌보는 데릴사위는 솔서(率壻)다. 둘 다 장인이 사위의 노동력과 경제력에 기대 보려는 것이다. ‘봄봄’의 ‘나’는 예서에 해당한다. 재력가가 공모한 데릴사위는 서양자(壻養子)에 가까워 보인다. 딸만 있는 집안이 가계(家系)나 가업(家業)을 이으려고 사위를 양자로 맞아들이는 것이다.
▶가업을 중시하는 일본에선 아들이 없거나 시원찮으면 데릴사위가 처가 성(姓)으로 바꾸고 일과 재산을 물려받는다. “열에 하나가 데릴사위”라고 할 정도다. 후지TV가 2001년과 2003년에 내보낸 드라마 ‘데릴사위’가 큰 인기를 끌 만도 하다. 우리 속담에 “겉보리 서 말만 있으면 처가살이 하랴” 했다. 아버지 심정이 오죽했으면 데릴사위를 공모할 생각까지 했을까 싶기도 하다. 거기 늘어선 줄에서 요즘 젊은이들의 실리적 결혼관을 새삼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