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의 휴대폰 주력 공장 해외 이전 결정은 네 가지 점에서 큰 충격을 던져주고 있다. 우선 국내 제조업 현실이 삼성전자 같은 첨단 국가 브랜드 기업마저 해외로 나갈 수밖에 없을 만큼 절박한 상황에 다다랐다는 점이다. 또 앞으로 대기업들의 외국행(行)이 촉발되면서 국내 산업 공동화(空洞化)가 한층 가속화될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특히 젊은 층이 일할 곳을 찾지 못하는 취업난 문제가 보다 심각해질 것으로 우려된다. 실제 업계에서는 이번 베트남 공장 신설과 중국 생산량 확대로 인해 국내에서 생길 수도 있었던 7000~8000개의 일자리가 해외로 달아날 것으로 보고 있다. 여기에 삼성전자에 휴대폰 부품을 공급해왔던 수백여의 중소 부품업체들 중 상당수도 해외 동반 이전(移轉)이 힘들어질 경우 사업에 결정적인 타격을 입을 것으로 예상된다.
◆첨단업종마저 공동화되나=삼성전자의 해외사업장 이전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다만 그 성격이 판이하게 달라졌다는 게 문제다. 이미 생활가전(家電)부문 등 단순 조립형 제품은 지난 2000년 전후부터 이전을 본격화한 상태다. 하지만 휴대폰·LCD(액정)·반도체 등 첨단 제품 쪽은 달랐다. 고(高)임금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이익률이 높았던 데다, 해외이전 할 경우 기술유출 우려가 무척 컸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휴대폰을 해외 중심 생산 체제로 바꾼 것은 수년 만에 상황이 크게 변했다는 얘기다. 동시에 향후 업종 구분 없는 전면적인 국내 제조업 공동화 가능성을 시사하는 것이기도 하다.
실제 국내 생산직 일자리 실종 파장은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 일단 구미 공장에서만 매년 뽑던 한 해 700~800명의 일자리가 사라졌다. 베트남 신규 착공과 중국·인도 증설에 따른 인력 규모까지 구미 공장 인력과 생산량에 비추어 단순 비교해 보면 향후 2~3년 사이에 7000~8000명의 일자리가 국내에서 해외로 옮겨 가는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삼성전자 등 대기업 글로벌 소싱 가속화될 듯=삼성전자가 휴대폰 생산기지마저 이전키로 한 근본 이유는 무엇일까. 업계 관계자는 "원가 부담을 낮추기 위해서 애국심에만 호소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면서 "결국 가장 값싼 원가를 찾아 세계를 수소문하는 글로벌 소싱(global sourcing)의 길밖에 방법이 없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실제 휴대폰 업계 세계 1위인 노키아나 모토로라는 이미 자국 내 생산량은 최소화하는 글로벌 소싱 전략을 사용하고 있다.
삼성전자가 이번에 휴대폰 생산의 양대 축(軸)을 ‘한국과 중국’에서 앞으로 ‘베트남과 중국’으로 바꾼 것도 이런 배경에서라는 것이다. 이럴 경우 한국 구미공장은 과도기적인 기지로 전락할 수밖에 없는 처지라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삼성전자의 지난해 휴대폰 총 생산량은 1억2000만대. 이 중 구미공장이 60% 넘게 만들었고, 중국 공장 비중이 40%를 밑돌았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입장은 뒤바뀐다. 당장 내년의 경우 국내 생산 비중은 40% 미만으로 급강하한다. 반면 중국을 비롯한 해외 생산량은 60%를 넘는다. 생산비중의 주도권이 국내에서 해외로 손바뀜된다는 뜻이다.
◆베트남이 삼성 휴대폰의 메카로 도약=베트남 공장이 본격 가동되는 2008년부터는 해외 생산 비중이 더욱 높아진다. 한 삼성전자 소식통은 "베트남에도 여러 위험 요소가 있긴 하지만 중국보다도 인건비가 저렴해 주력 생산 기지로 정한 것으로 안다"며 "조만간 베트남 내 최종 투자 부지가 확정될 예정"이라고 말했다. 삼성전자는 이르면 내년 말부터 순차적으로 공장을 완공, 생산 규모를 1억대까지 늘린다는 목표다.
삼성전자는 중국 공장에서의 생산량 역시 두 배 이상으로 늘린다는 계획이다. 역시 당장 내년부터다. 기존 톈진(天津)공장의 경우 이미 두 배 가까운 생산량 증설 작업이 진행 중이다. 구매력이 높은 남부 광둥(廣東)성 후이저우(惠州)공장도 올 3분기부터 본격 가동을 시작한다. 부품 역시 지금까지는 단가 절감 노력 등으로 버텨왔으나, 이젠 아예 해외 조달 체제로 바꾸겠다는 구상이다.
CJ투자증권 송명섭 애널리스트는 “국내 부품 업체들 역시 기술력 있는 곳은 삼성전자의 요청에 따라 베트남이나 중국에 공장을 짓겠지만 그렇지 못한 업체들은 커다란 타격을 입을 것”이라고 말했다.
● 삼성 휴대폰 사업 현주소
‘글로벌 생산’ 갖춘 노키아·모토로라와 원가절감 전쟁
삼성전자 휴대폰 사업부(정보통신 총괄)는 국내에서도 '애니콜'이란 브랜드로 유명한 이동통신 전화기를 만들어내는 곳이다. 삼성전자 내부적으로도 휴대폰 사업은 반도체에 버금가는 삼성전자의 양대 사업 축(軸)의 하나다. 지난해 삼성전자 매출(59조원) 중 19조원(매출의 32%)이 반도체 사업에서 나왔고 17조원(29%)이 휴대폰에서 나왔다. 그만큼 삼성전자의 핵심 사업이란 뜻이다. 물론 실제 수익 측면에서 이들 양대 축의 비중은 훨씬 올라간다.
삼성전자 휴대폰 사업부의 이런 위상은 '애니콜 신화'로 대변되는 2002년, 2003년의 고속 성장에서 비롯됐다. 당시 휴대폰 사업은 제조업체로는 드물게 연간 20%가 넘는 영업이익률을 기록하며 쾌속 성장, 세계 3위까지 뛰어 올랐다.
하지만 2005년부터 매출 정체 국면으로 접어 들었고, 세계 1위 노키아와는 한참 멀어져 버렸다. 더구나 정체가 이어지자 지난해엔 2위 모토로라와의 저가(低價)휴대폰 공세와 4위 소니에릭슨의 첨단 휴대폰 사이에 끼여 고전했다. 작년 4분기에는 영업이익률이 7%대까지 떨어졌다. 따라서 영업이익률을 올리고, 경쟁력을 회복하기 위해서 생산원가가 싼 해외이전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관측이 가능하다.
실제 삼성전자는 올 들어 동남아시아와 중국에서 저가폰 판매를 늘리며 시장 점유율을 13.8%까지 높여 놓았으나 여전히 마음을 놓을 수 없는 상황이다. 노키아와 모토로라 등 선두기업은 이미 글로벌 생산기지 체제를 갖춰 놓은 상태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