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오후 경북 의성군 안계면. 면사무소를 중심으로 나지막한 상가들이 약 300m 길이로 이어진 읍내에는 세 집 걸러 한 집꼴로 노랑·빨강·파랑의 산뜻한 새 간판이 걸려 있었다. 모두 최근 문 연 부동산 중개업소다. 이 일대 전신주에는 ‘땅’ ‘토지 고가매입’ 등이 적힌 전단이 나붙어 있었다. 안계면 상인 박모(여·54)씨는 “서울·부산·대구 사람들이 몰려들어 ‘땅을 팔라’고 부추기고 다닌다”며 “열흘 전부터 농사가 시작돼 다소 잠잠해졌지만, 주말이면 고용된 주부들이 3∼4명씩 모여 다니며 명함을 뿌리기도 한다”고 말했다.
차로 10여분 거리에 있는 의성군 다인면 입구. 조립식 건물에 중년 남자 3명이 매달려 ‘○○부동산중개소’라 적힌 대형 플래카드를 걸고 있었다. 컨테이너를 개조해 만든 인근 부동산중개업소에 들어가자, ‘도청이전 사업 박차’ ‘도청이전 경북 북부로’ 등 제목이 달린 신문기사가 곳곳에 붙어 있다. 공인중개사는 “의성군은 경북 중심부에 위치한 데다 다른 지역보다 땅값이 저렴해 가장 유력한 도청이전 후보지”라며 “최근 6개월 사이 2배 이상 올랐지만, 아직도 투자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대구에 있는 경북도청을 경북 지역으로 옮기려는 ‘도청이전 사업’이 가속화되면서 경북 곳곳이 들썩이고 있다. 도청이전추진위원회가 출범하고 사업 스케줄이 구체화되자 후보지로 거론되는 안동시, 의성군, 상주시 등에 부동산 업자들이 몰려들고, 농지와 아파트 등 부동산 가격이 출렁이고 있다.
인구 1만명 남짓한 의성 안계·다인면에만 최근 3∼4개월 사이 부동산 중개업소 16개가 생겨났다. 평당 2만∼3만원이던 농지가 이제 5만원 밑으로는 거래되지 않고, 임야도 30% 이상 올랐다. 도로변은 10만원 주고도 못 산다. 오병희 안계면 부면장은 “초봄부터 몰려든 부동산 업자들은 등기도 이전하지 않고 몇 차례씩 사고파는 불법거래로 땅값만 띄워놓은 채 서서히 빠져나가는 추세”라고 말했다.
연초에는 안동시 풍산읍 지역이 꼭 이랬다. 부동산 중개업소 10여개가 생겨나고, 토지거래도 활발했다. 올 들어 4월 말까지 풍산읍의 토지거래량은 622필지(34만3000평)로, 지난해 같은 기간(183필지·18만2700평)보다 3배 이상 늘었다. 특히 서울 등 외지(外地) 사람들이 사들인 땅은 지난해(1∼4월) 9만1113평에서 14만3068평으로 증가했다. 덩달아 아파트 시장도 춤추고 있다. 지난달 안동시 태화동에서 분양한 한 아파트는 39평형 청약률이 6대1을 기록했고, 전체 계약률도 83.3%에 달했다. 주택보급률이 100%인데도 갑자기 아파트 건설 붐이 일어 지난해부터 신규 아파트가 6440가구나 지어지고 있다. 안동시 관계자는 “10여년 동안 신규 아파트가 없었는데, 요즘은 분양권 전매광고까지 나붙고 있다”며 “풍산에 불어닥친 바람이 시내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 같은 움직임은 지난해 5·31 지방선거 때부터다. 시장·군수, 도의원 등 후보들의 ‘도청 유치’ 공약이 쏟아지면서 시작됐고, 민선 4기 출범 이후 도청이전 사업이 속도를 내면서 심화됐다. 부동산중개업체인 부동산114 이진우(36) 대구경북지사장은 “김천의 혁신도시, 경주의 방폐장에 이어 도청이전설(說)까지 겹쳐 경북의 부동산시장은 수시로 술렁이고 있다”면서 “땅값만 올리는 일명 ‘기획부동산’, ‘떴다방’들이 안동을 시작으로 의성·군위·상주·영천 등을 돌며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고 했다.
피해도 만만찮다. 의성군은 최근 사업비 5억원을 들여 28번 국도에서 안계면 양곡리로 들어가는 우회도로를 신설하려다 급등한 땅값 때문에 포기하고, 기존 도로 2㎞ 구간을 확장하는 것으로 사업을 변경해야 했다. 안계면 주민 우희영(55)씨는 “1980년대 말 중앙고속도로가 뚫릴 때 일었던 투기바람이 재현되는 것 같다”며 “ ‘누구는 얼마에 팔았다’ ‘누구도 땅을 내놨다’는 소문만 무성해 농사철인데도 일손이 잡히지 않는다”고 했다.
이에 대해 경북도 반병목 새경북기획단장은 “입지선정 기준이 나와 후보지가 압축되는 대로 도와 해당 시·군이 나서 토지거래허가구역 지정 등 부동산투기대책을 마련할 계획”이라며 “내년 6월쯤 후보지가 결정되기 전까지 도민들은 동요되지 말고 성급한 부동산거래로 피해를 보지 않도록 주의해야 할 것”이라고 당부했다.
지난달 24일 출범한 도청이전추진위원회는 이달 중 도청이전 입지선정을 위한 용역을 발주, 9월쯤 23개 시·군으로부터 후보지를 신청 받아 연말까지 입지조건을 충족하는 후보지를 압축해 평가대상지를 선정한다. 내년 6월에는 83명의 평가단을 구성, 대상지를 평가한 후 도청이전 예정지를 확정 짓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