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의문자(表意文字)인 한자로 외래어 발음을 정확하게 표기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히틀러의 나치는 納粹(나취·na cui)인데, ‘순수함을 받아들인다’는 뜻이니 이상하다. 아르메니아는 亞美尼亞(야메이니야·yameiniya)로 쓸 수밖에 없다.

잘못 발음되고 있는 한자어를 깊이 연구한 이재호(李載浩) 부산대 명예교수는 ‘복개(覆蓋)’는 ‘부개’, ‘갹출(醵出)’은 ‘거출’이라고 써야 하며, ‘강감찬(姜邯贊)’은 ‘강한찬’, 고려 말의 역신(逆臣) ‘경복흥(慶復興)’은 경부흥으로 써야 맞는다고 역설한다. 이는 틀린 발음이 관습이 되어 버린 경우인데, 손암(巽庵) 정약전(丁若銓)의 ‘玆山魚譜’는 기존대로 ‘자산어보’인지 아니면 ‘현산어보’가 맞는지 단정하기 어려운 경우이다.

정약전에게 자산(玆山)이란 호를 지어준 인물은 동생 정약용이다. 정약용은 흑산도에 유배된 정약전에게 편지를 쓰면서, “흑산이란 이름은 아득한 어둠이란 뜻이어서 말로 지적하기 무서웠기 때문에 편지에는 자산(玆山)이라고 고쳐서 썼는데, 자(玆)는 흑(黑)과 같다”라고 ‘역학서언(易學緖言)’에서 밝히고 있다. 정약전도 ‘자산어보’ 서문에 “자산(玆山)은 흑산(黑山)이다. 나는 흑산도에 유배되어 있어서 흑산이란 이름이 무서웠다. 집안사람들의 편지에는 흑산을 번번이 자산이라 쓰고 있었다”라고 쓰고 있다.

중국의 ‘사원(辭源)’은 석문(釋文), 즉 고대 한자에는 ‘자(玆)’자와 ‘자(滋)’자가 통하는데 ‘자(滋)의 음(音)은 현(玄)과 같다’고 쓰고 있다. 현이라고도 읽는다는 뜻이다. 이는 정약용이 玆山을 기존 발음대로 자산이라고 읽었는지 석문(釋文)대로 ‘자(滋)=자(玆)=현(玄)’이라고 읽었는지를 알아야 풀 수 있는 문제이다.

고구려를 고구리라고 읽어야 한다는 주장이 다시 대두되고 있다. 려(麗)를 리로 읽어야 한다는 주장은 일리가 있지만 고(高)자와 구(句)자도 문제가 된다. 현재의 중국어 발음으로는 ‘가오쥐리’, 또는 ‘가오거우리’가 된다. 백제(百濟)나 신라(新羅)도 마찬가지 문제가 있다. 우리 옛 지명의 발음 체계에 대한 종합적인 연구 후에 결론 내려야 할 문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