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양국이 ‘동해’ 표기 문제로 국제사회에서 다시 맞붙는다.

무대는 다음달 7일부터 모나코에서 5년 만에 개최되는 국제수로기구(IHO) 총회. 이번 회의를 앞두고 한국과 일본은 치열한 물밑 외교전에 돌입한 상태다. 특히 일본은 3명의 이사 전원을 새로 선출하는 이번 총회에 해양전문가를 후보로 출마시킨 후 외교력을 총동원하고 있어 우리 정부가 긴장하고 있다.

◆2002년엔 일본해 표기 삭제 투표

그동안 세계지도나 해도(海圖) 제작의 기본 지침이 되는 IHO의 결정은 일제 때인 1929년 ‘동해를 일본해로 단독 표기한다’는 것이었다.

한국은 2002년 IHO에서 일본해 단독 표기에 문제가 있음을 제시해 이를 공론화하는 데 성공했다. 정부는 동해처럼 ‘두 나라가 바다를 공유할 경우 명칭을 병기(倂記)할 수 있다’는 IHO 결의안(1974년)에 근거, ‘동해·일본해’ 병기를 주장했다.


IHO는 이에 따라 같은 해 8월 동해를 일본해로 단독 표기해 온 입장을 바꿨다. 유엔과 지도 제작업자들에게는 경전과 같은 '해양과 바다의 명칭과 경계' 4판에서 일본해 표기를 삭제하고 이를 투표에 부쳤다. 그러나 IHO는 한 달 후 아무 설명도 없이 이 투표를 중지시켰다. 정부 관계자들은 "일본이 전 내각 차원에서 상상하기 어려운 엄청난 외교력을 동원해 투표가 중단됐다"고 말했다. 이후 IHO는 한·일 양국이 협의해서 결정된 안을 보고해 달라고 했으나, 양측의 입장 차이는 오히려 커졌다.

◆IHO총회장서 치열한 외교전

이번 총회에서는 5년 전 갑자기 중단된 '일본해 표기 삭제'를 어떻게 할 것인지가 최대 쟁점이다. 총회에 참석하는 이기석 동해연구회장(서울대 명예교수)은 "모두에게 민감한 문제이기에 이사진이 결정하지 못하고 총회에서 회원국들이 결정하는 형식을 띠게 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정부는 IHO 본부가 있는 모나코에 담당자들을 파견, 동향을 파악한 뒤 회원국을 상대로 한국의 입장을 지지해 줄 것을 요청하고 있다. 국립해양조사원의 한 관계자는 "이번 기회를 놓치면 다시 5년을 기다려야 하기 때문에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고 말했다.

◆日, 이사진 진출 시도

정부는 일본이 IHO 회원국에 주재하는 자국 공관에 전문을 보내 일본해 단독 표기의 정당성을 홍보하도록 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일본은 IHO 이사진을 장악하기 위한 전략도 추진하고 있다. 일본은 이번 총회에 일본해상보안청 산하 해양정보부에서 최고책임자를 지낸 니시다 히데오(西田英男) 일본수로협회 전무이사를 출마시켰다. 니시다 후보는 재선을 노리는 그리스 칠레 출신의 기존 이사들 외에 노르웨이 호주 나이지리아 국적의 후보들과 경합하고 있다. 국립해양조사원의 고위 관계자는 "니시다 후보는 상당한 중량급 인사로 그가 당선되면 동해 표기를 추진하는 데 커다란 장애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IHO

국제수로(水路) 회의 결의에 의해 1921년 모나코에 신설된 국제수로국이 모태다. 1970년 현재의 국제수로기구로 확대됐으며 70여 개국이 회원국으로 활동하고 있다.

해양의 경계 획정, 해도(海圖) 일원화를 비롯, 각국의 수로 업무를 조정하고, 수로측량 기술을 개발하는 것이 주요 업무다. UN 은 바다의 명칭에 대해서는 IHO 결정을 존중하도록 돼 있다. 우리나라는 1957년에, 북한은 1989년에 회원국으로 가입했다. 영문 명칭은 IHO(International Hy drographic Organization).

니시다 히데오

일본의 대표적인 해양전문가. 우리 정부의 국립해양조사원에 해당하는 일본 해상보안청 산하 해양정보부장으로 2004년 한일 수로기술회의에 참석했다. IHO의 핵심 기구인 전략기획단회의 부의장으로 활동하면서 국제 해양계에 상당한 인맥을 갖고 있는 것으로 우리 정부는 파악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