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호 ‘이스마엘(이스마일)’을 풀어라.

미 버지니아공대 ‘학살범’ 조승희(23)의 범행 동기와 심리를 해독하는데 ‘이스마엘(이스마일)’이 키워드로 19일 떠올랐다.

조는 NBC 방송국에 우편물을 보내면서 자신의 이름 대신 ‘A. Ishmael(이스마엘)’이라고 썼다. 스스로를 ‘이스마엘’로 여긴다는 의미인 셈이다. 시체로 발견된 조의 왼팔에는 붉은 잉크로 ‘이스마일 도끼(Ismail Ax)’란 글귀가 새겨져 있었다. 조는 권총으로 무장한 자신의 팔을 ‘도끼’로 생각했을 가능성이 있다.

학살을 앞둔 조의 머리 속에서 이스마엘(이스마일)은 대체 무슨 의미였을까?

① 종교적 의미?

조가 NBC에 보낸 비디오에는 기독교에 대한 언급이 있다. 그는 “나는 예수 그리스도처럼 죽고 싶다”며 “약하고 힘없는 사람을 일깨우기 위해 예수처럼 죽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벤츠 자동차로도 부족했느냐, 금목걸이로도 부족했느냐”며 부자와 쾌락주의에 대한 강한 반감을 표출했다.

이스마엘(꾸란에선 이스마일)은 성경과 꾸란에 모두 등장한다. 꾸란에서 이스마엘은 유일신 알라를 믿기 시작한 아브라함(이브라힘)의 아들로서 이슬람교도의 조상이다. 한국 이슬람중앙회 장 후세인 씨는 “이브라힘이 우상 숭배를 타파하기 위해 도끼를 들고 예배소에 올라가 작은 우상을 모두 깨뜨리고 큰 우상의 목에 걸었다는 내용이 꾸란에 있다”고 말했다.

반면 성경에는 이런 내용이 없다. 대신 이스마엘은 추방자로 그려진다. 아브라함은 부인 사라가 아이를 못 낳자 여종(하갈)과의 사이에서 이스마엘을 얻는다. 그러나 훗날 아내가 아들 이삭을 낳자 여종과 이스마엘을 사막으로 내쫓는다. 이삭은 기독교인들의 조상으로 여겨진다.

이런 맥락에서 조의 ‘이스마엘’은 종교적 의미를 내포할 가능성이 높다. 기독교에서 이스마엘은 추방자다. 미국은 대표적인 기독교 국가이다. ‘외톨이’ 조는 스스로를 “추방됐다”고 여겼을 공산이 있다.

반면 이슬람교에서 이스마엘은 ‘도끼로 우상을 깨뜨린 아브라힘의 아들’이다. 알카에다 조직이 테러의 명분으로 ‘이스마엘의 형벌’, 즉 ‘신의 처형’이라고 주장한 것도 나름 근거가 있다. 조는 기독교 국가인 미국 사회를 향해 강한 분노를 드러냈다.

② 문학 작품 속 인물?

조승희가 영문학과 학생이었다는 점에서 그가 읽은 작품 속의 주인공이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조가 우편물에 쓴 ‘이스마엘(Ishmael)’이란 이름은 허먼 멜빌의 소설 ‘모비딕(백경)’에 등장한다. 이 소설의 첫 문장은 ‘나를 이스마엘이라 부르시오’라고 시작한다. 소설에서 이스마엘은 좋은 교육을 받았지만 아무 데도 끼지는 못하는 사람(outcast)이었다. 그래서 선원이 됐다. 조승희도 ‘외톨이’였다. 그러나 일등 항해사인 이스마엘은 끝까지 살아 남아 남는다. 소설에서 그려지는 고래와의 사투도 이스마엘의 시각이다. 반면 조는 자살했다.

제임스 페니모어 쿠퍼의 소설 ‘대평원’에도 ‘이스마엘 부시’라는 이름이 등장한다. 이스마엘은 대평원을 넘으면서 살인·파괴의 도구로 총과 도끼를 사용한다. 그러나 여기서 도끼는 집을 만드는 도구로서 ‘창조’라는 의미를 동시에 갖는다.

③ 다양한 추측들

네티즌들은 조승희가 이슬람교로 개종하면서 새로 얻은 이름이 ‘이스마엘’이란 추측도 한다. 복서 무하마드 알리의 원래 이름도 캐시어스 클레이 였다. 그러나 조가 이슬람교를 믿었다는 현지 보도는 아직 없다.

사건 초기 범행 동기로 치정 문제가 거론되면서, 조의 여자친구가 새로 사귄 남자 이름이 이스마엘 아니냐는 견해까지 나왔다. 그러나 조의 범행 동기가 단순한 치정 문제는 아닌 것으로 결론 나는 상황이다. 터키 힙합예술가 이름이 이스마엘이란 주장까지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