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초원의 가젤은 매일 사자보다 느리면 잡아먹힌다는 점을 새기고, 사자는 가장 느린 가젤보다 더 느리면 굶어 죽는다는 것을 새긴다. 이 처절한 자연의 생존경쟁에서 둘 다 눈만 뜨면 달려야 사는 것이다.
첨단과학기술의 혁신적 발전과 자유무역의 급속한 확대로 글로벌 경쟁이 가속화되는 미래사회에서 우리나라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국가적 전략을 세우는 것은 생존과 직결된 문제이다. 자원국이 아닌 우리나라는 국민적 창의성의 함양과 과학 기술력의 선진화를 근본 전략으로 내세워야 한다. 이 두 가지가 경쟁력의 원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의 경우 창의성 함양을 위한 수학·과학교육이 백가쟁명식 분야 이기주의와 근시안적 정책으로 인해 붕괴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또한 정부의 관심이 대규모 목적 지향적 연구나 응용개발 연구에 과도하게 집중되면서 개인의 창의성이 힘을 발휘하는 소규모 기초과학 연구가 연구개발 지원의 사각(死角) 지대에서 고사되고 있다.
지난 10년간 시행된 현 교육과정은 중등교육의 다양화와 자율적 선택권 확대란 허상 아래 심각한 부작용을 낳았다. 입시제도에 좌우되는 중등교육의 현실에서 점수 따기 어려운 수학과 과학과목이 기피되고, 그 결과 미·적분도 모르는 이공계 대학생을 양산하고 있다.
예를 들어 지난 가을에 실시한 수능고사의 전체 응시자 중 3.3%만이 물리 II를 선택하는 등 일선 고등학교에서 아예 물리반 학급이 편성되지 못하는 실정이다. 2006년에 시행된 중등교사 임용고사에서 선발된 물리 교사가 서울지역은 1명에 불과하다. 부산, 울산 지역에서는 아예 1명도 뽑지 않았다. 우리나라 중등 과학교육 체제가 무너지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주는 한 단면이다.
사회는 이런 일이 10년, 20년 후에 어떠한 결과로 나타날지에 대한 걱정을 해야 한다. 뮤추얼펀드, 선물시장, 지구온난화, 테라급 메모리, 나노기술 등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뉴스들은 수학·과학 교육을 제대로 받지 않고선 이해하기 힘들다. 이대로 가다간 미래 세대는 뉴스를 보고도 아무 생각을 하지 못하는 눈뜬 장님이 되고 말 것이다.
사정이 이런데도 교육인적자원부는 얼마 전 중등교육과정 개정작업에서 단순히 학생들의 부담을 줄이는 데만 초점을 맞췄다. 수학·과학 과목은 기술·가정 교과와 함께 분류돼 정부안대로라면 수학·과학 과목을 하나도 듣지 않고도 대학을 갈 수 있다. 이래서는 개인의 창의성이 발휘될 리 만무하다.
이제 자유무역 체제하에서 선진국과 동등하게 기술 경쟁에 나서야 하는 우리나라는 선진과학기술을 뒤좇는 과거의 모방형 과학기술에서 벗어나야 한다. 괄목할 성장을 이룬 개발기술 부분은 산업계가, 그리고 창의적이지만 위험부담이 있는 기초응용 분야는 정부가 맡아야 한다.
그러나 정부의 연구비 지원 패러다임은 ‘선택과 집중’ 그리고 ‘연구의 효율성’이란 명분 아래 목적지향적 대형 과제 위주로 진행되고 있다. 창의적 연구는 풀뿌리 차원의 소규모 개인 연구를 바탕으로 한 기초과학 인력 생태계에서 창출되는 것이다.
지난주말 이런 위기 의식하에 수학·물리·화학의 기초과학 3대 학회가 참여하는 ‘기초과학 학회협의체’가 처음으로 결성됐다. 협의체의 목표는 ‘중등 수학 및 과학교육의 정상화’와 ‘풀뿌리 기초과학 살리기’다. 이제 과학자들이 창의성 함양을 위한 수학·과학 교육의 강화와 과학기술에 기초한 글로벌 국가경쟁력 강화에 발벗고 나섰다. 이러한 과학계의 노력이 단순히 분야 이기주의가 아니라 국가의 미래와 직결된 문제임을 정부와 사회는 알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