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박동희 선수의 롯데 시절 투구모습

지난 목요일(22일) 새벽 불의의 교통사고로 39세에 유명을 달리한 '광속구' 박동희. 인생의 마운드에서는 비록 일찍 내려왔지만 그의 야구 사랑은 세상을 떠나기 직전까지도 계속된 것으로 알려져 주변을 더욱 안타깝게 했다.

고 박동희는 팔꿈치 부상 등으로 35세에 은퇴한 뒤 부산 해운대에서 식당을 운영해왔다. 항상 바빴지만 주말이면 어김없이 사회인 야구단에서 함께 뛰었고, 부산지역 리틀야구단에서 꿈나무들을 지도하면서 야구와의 연을 이어왔다고 한다.

그래선지 빈소가 차려진 부산 좋은강안병원 장례식장에는 부산 지역 사회인 야구단 소속 멤버들이 많이 눈에 띄었다. 그가 생전에 얼마나 사회인 야구에 애정을 쏟았는지 알 수 있는 대목.

"은퇴한 뒤에도 야구를 잊지 못했다"며 형을 회상한 동생 박훈희씨는 "형은 아마추어를 위한 정식 구장이 하나도 없는 점을 항상 걱정하곤 했다. 그래서 야구장 건립을 평생 숙원으로 생각하고 직접 알아보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실제로 지난 겨울 고인은 적당한 부지를 찾는데 전력을 다했고, 가시적인 성과도 있었다고 한다. 몇 차례 상경해 관련 수도권의 지역 단체장들을 만나 부지 임대를 타진했다. 친구들과 의기투합해 건립 비용도 어느 정도 마련했기 때문에 자신이 있었다. 얼마 전 그의 노력이 빛을 봐 경기도 김포시 고촌면에 부지 제공자가 나타났다고 한다. 그러자 펜스와 조명시설을 설치해주겠다는 이들도 등장했다.

구체적인 단계에 접어들자 유소년을 위한 '박동희 야구교실'을 열겠다는 구상도 했다고 한다. 하지만 꿈이 실현되기 직전, 죽음의 그림자가 그를 덮쳤다. 주변 사람들은 "갑작스런 죽음으로 그의 노력이 빛을 보지 못했다"며 눈물을 글썽였다.

유가족에 따르면 고인은 평소 효심도 지극했다. "어릴 때부터 운동한다고 어머니 곁에 있어본 적이 없었다"며 늦게 일을 마치고도 꼭 어머니(나명숙씨)를 찾은 뒤 귀가했다고 한다. 또 일이 늦게 끝나는 날이면 새벽 운동을 나가는 어머니와 함께 달리기 위해 본가로 가곤 했다. 유가족들은 "사고 당일에도 본가로 오다가 그렇게 된 것 같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장례식장을 찾은 지인들은 "평생을 야구에 몸바친 고 박동희의 노력과 헌신이 후배들에게 좋은 본보기가 되고 한국야구 발전에도 밑거름이 되길 바란다"고 입을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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